이 폭염 속에 일이 많았던 하루였어요.

일상|2018. 7. 24. 19:48

어제 동생의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갔던 어머니가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정기검진 받으러 가면서 하룻밤 묵고 오실줄 알았는데 바로 오셨어요. 딱 직감했죠. 동생도, 엄마도, 아빠도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서 군말없이 하루종일 부모님 뜻대로 움직였답니다. 으쌰으쌰.

 

* 덕분에 이제서야 블로그에 잡담 하나 올려요.

 

 

▲ 어제 오후 7시쯤 도착하셔서 식사하고 바로 취침모드에 돌입한 부모님 모습입니다.

 

낮에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밤에는 선선하다못해 추운 섬에서 편하게 지내다가 도시의 열대야를 맛보고 가셨습니다. 새벽 내내 에어컨을 틀고 끄기를 반복하셨어요. 저는 새벽 1시, 3시에 한번씩 깨고 6시에 일어났지요. --v

 

섬에서의 생활이라는게 해 떠있을때 일하고 해가 지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방식이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이어지는 일일드라마 3편을 보시고 바로 꿈나라로 가셨습니다. 불을 다 끄고 보조 조명만 켠 것은 '나는 잘테니까 굳이 깨우지 말거라'라는 무언의 표시입니다. 어쨌든 어머니의 복귀로 혼자 계신 아버지 걱정은 이제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침에 아버지 병원으로 모셔다드리고 바로 어머니와 함께 동양생명에 보험금을 신청하러 갔습니다. 호수공원에 사무실이 있어서 일을 다 본 뒤에 투썸에서 간단하게 바닐라라떼와 샌드위치를 먹었어요. (아직도 초보운전이라 호수공원은 참 부담스럽습니다. 아무도 없는데도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혼났네요.)

 

 

▲ 어머니와 함께 먹은 아이스 바닐라라떼와 샌드위치에요.

 

참고로 부모님은 이런 카페를 이용한 적이 없어요. 돈이 있어도 시킬 줄 몰라서 못 먹는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그래서 언제나 제가 동행할때만 카페를 오십니다. 물론 주문은 모두 제가 해요. 두 분은 메뉴판도 안 보고 그냥 자리에 앉지요. 주문하기는 쉽습니다. 커피는 달달한거, 사이드메뉴는 최대한 부담없는걸 주문하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샌드위치였고 지금까지 마카롱, 허니브레드, 티라미슈, 호두파이 등등 별별 사이드를 다 시켜봤네요. (커피는 카페모카, 바닐라라떼 중 하나면 충분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알려드리면 이용할 줄 알았는데 안되시더군요. 편의점에서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 구매하는걸 몇 번이나 보여드리고 알려드려도 안되더군요. 그래서 그냥 이제 제가 직접 같이 다닙니다. 간혹 혼자 편의점이라도 들르시면 진열대를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시는 어머니세요. 이 중에 뭘 먹어야 쓰지않냐고 묻는거죠. (편의점 알바님들 어르신들이 달달한 커피 찾으면 모른척하지말고 골라줍시다.)

 

날이 너무 더워서 시원한 롯데리아에 앉아서 땀도 식힐겸 뭘 먹고 싶은데 주문할 줄 몰라서 못 한다는 말이 가슴에 박혔던 하루였습니다. (무능한 아들놈이 죄인이옵니다.)

 

 

▲ 굳이 이렇게 사진을 찍은 이유는 어머니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리기 위해서랍니다. 동생에게 보내서 약올리려고 하셨다네요. 그래서 예쁘게 잘 찍어보라며 먹는걸 앞에두고 참으셨어요. 

 

 

▲ 전 어머니의 명을 받들고 3장을 찍어서 보내드렸습니다. 셋 중에 예쁜걸로 골라서 동생에게 보내세요.~! (이게 소인의 최선이옵니다.)

 

 

▲ 그리고 정미소에서 닭 먹이를 사야겠다고 말씀하셔서 점심도 안 먹고 바로 본가 방향으로 출발했습니다. 위에 사진은 마침내 발견한 정미소입니다. 이 사진이 나오기까지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 근데 싸래기 파는데가 어디있어요?

아빠 : 대요리 방앗간 찾아봐

나 : 검색에 안나오는데? 대요리는 어디에요?

엄마 : 지곡에서 대산 가다보면 나와

나 : 그럼 가다 말해줘요.

 

(중략)

 

나 : 대요1리에요? 대요2리에요?

엄마 : 몰라

나 : 왼쪽? 오른쪽?

엄마 : 직진

 

(직진 중 왼쪽에 정미소가 보임)

 

엄마 : 저기 정미소있다.

나 : 여기 유턴 안되요. (중앙분리대 있었음)

아빠 : 그냥 뒤로가면 안되나?

나 : 그건 역주행이에요

모두 : (웃음)

 

(유턴 구역을 통해서 정미소로 찾아갔으나 사람이 없었음)

 

아빠 : 환성리 방앗간으로 가자.

나 : 환성리는 또 어디에요?

엄마 : 가다보면 나와

 

(검색하자 환성리 정미소가 나옴)

 

나 : 일단 여기로 가자.

 

(가고보니 예비군 훈련 받으러 가는 길이었음)

 

엄마 : 앞으로는 니가 집에 오면서 여기서 한 포대씩 사와

나 : 저거 80kg인데?

엄마 : 40kg 두 개 사오면 되지

나 : (속마음) 싫은데?

 

재미있자고 일부러 이렇게 적어봤네요. 상황과 분위기는 대략 비슷합니다.

 

어쨌든 정미소는 위치를 알아뒀으니 앞으로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예전 글을 보면 15마리의 튼실함을 목격할 수 있을거에요. (엄청나게 먹어댑니다.)

 

이후 대산하나로마트에서 순수하고 부모님이 드실 것만 장을 봤어요. 화병이 도진 엄마의 식성 위주로 육식이 중심이었답니다. 스팸도 4개 세트로 산 다음 저랑 2캔씩 나눴어요. "너 필요한거도 사라" 하길래 메밀소바 5개만 샀습니다. 냉모밀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서산에는 냉모밀 먹으러 가자며 불러낼 친구가 없는지라 입맛만 다시다가 인스턴트로 한 봉지 질렀습니다. (오늘의 소득 메밀소바 1세트, 스팸 2캔으로 기름값 8천원을 퉁쳤어요.)

 

장을 보는데 작은 어머니를 만나서 일부러 늦게 출발했네요. 초보운전 티내기 싫잖아요. 역시 작은 어머니 suv는 광속질주를 했어요. (급커브가 많은 구간인데 거침없는 속도를 자랑하시더군요. 전 쫄보라 아주 천천히 갔어요.)

 

그렇게 부둣가에 도착해서 40kg짜리 닭 먹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배에 실었답니다. 아버지가 같이 들고 가자는데 그럴바에는 그냥 어깨에 얹고 말죠. 작은 어머니 짐까지 싹 다 배에 옮기니 비루한 체력이 땀을 방출합니다. 이미 샤워를 한 상태죠. 그렇게 보내고 전 다시 서산으로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부모님과 갈 때는 50분, 혼자 돌아올때는 30분)

 

집에와서 씻고 청소하고 쓰래기 버리고 그릇 정리하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니까 오후 3시더군요. 그렇게 1박 2일을 아주 알차고 땀 뻘뻘 흘리며 보냈습니다. 이제 좀 저도 정신이 돌아오네요. 역시 노는데는 잡담이 최고에요.

 

※ 솔직히 전 부모님의 자산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의 통장 잔고도 알고 있죠. 동생과의 전쟁을 선택한 엄마가 이해되면서도 가끔 안타깝기도 합니다. 나도, 동생도, 부모님도 모두 상처를 받으며 살고 있잖아요. 이해하고 미안한 일이죠. 그래서 큰 사고를 자주 치는 이 아들놈은 평소에는 착한 아들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죠. (오늘 어머니의 선언 '아들, 딸 돈 한푼도 안줘' 에 박수를 쳤습니다. 제발좀요.)

 

마흔이 다 된 백수 아재는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사실 이 글은 정미소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혹시 잊어먹을까봐 적어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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