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 관람객 후기

취미|2018. 11. 28. 12:29

개봉 소식을 접하고 한 달을 기다려 본 영화 국가부도의 날 후기를 올려봅니다. 왜 이 작품을 기다렸을까? 김혜수, 유아인이라는 걸출한 배우들보다 제 기억 때문일겁니다.

 

30대 후반인 제게 IMF는 아무것도 아니었거든요. 당시 10대인 제게는 나라가 망하는것보다 더 아프고 참혹한 개인적인 현실이 있었기에 그랬고, 부모님의 직업이 1차 산업이라 어쨌든 밥은 먹고 살 수 있었기에 그랬습니다. IMF에 대해서 잘 모르기에 이 작품을 기다렸던거죠.

 

그리고 조조 1회차를 본 느낌은 '역시' 입니다.

 

 

개인적인 느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누구나 꼭 한번은 봐야된다.' 입니다. 다행히 작품은 몇 명만 찍어서 나쁜놈 취급을 하기때문에 봐도 기분은 나쁘지 않을겁니다.

 

대신 이 작품에서 조우진(재정부 차관), 김혜수(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유아인(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금융맨)의 단독 스피치 장면을 유심히보고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1000년 전에도, 1997년에도,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들입니다.

 

다만, 화내거나 분노하지마세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지 않을테니까요. 자격이 없는데 분노하는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제 후기의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격에 대한 문제'



그럼 이제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볼까요?

 

 

한시현 (김혜수)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으로 재직하며 IMF 한 달전에 위기에 대해서 보고를 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사실상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주인공입니다.

 

관객으로서 이 작품에서 김혜수는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 톤이 정말 좋더군요. 하지만 그녀의 캐릭터는 너무 이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지만 위기에 대해서 경고하고 그 상황을 컨트롤하기에는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모두 다 옳지만 현실적이지 않았기에 제 눈에는 한시현의 캐릭터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한국에 단 하나의 선결조건이 전제되어야됩니다. 바로 '자정능력'이죠. 이게 없는 상태에서 모두를 위한 선택지는 힘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녀를 통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날'이 을사늑약을 맺던 100여년 전 '그 날'과 많이 닮아있더군요. 안타깝고 아쉬웠습니다.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를 가진 엘리트가 너무 순수했다.

 

이 캐릭터에 대한 제 한 줄 평입니다.

 

 

재정부 차관 (조우진)

 

청와대 경제수석보다 직급은 낮으나 권력이 강했던 캐릭터입니다. 한 마디로 수석은 바지사장이었고 한국을 움직이는 동력에 선을 대고있던게 바로 이 캐릭터라는거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초반부에서는 아주 나쁜 캐릭터로 보였으나 극이 진행될수록 이 사람의 편에 서게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그의 탐욕과 사심이 아니라 그의 판단이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자정능력이 없다.'는 한 가지 조건이 없었기에 그의 목적은 욕할 수 있어도 그의 말과 행동이 나쁘다고 비난할 수 없더군요.

 

그리고 그는 한시현과 다르게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필 그 힘을 가진 사람이 너무 현실적이었다는게 안타까울 뿐이었네요.

 

우리가 자정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협상 카드를 쥐고있는 IMF,뒤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미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했던게 아쉽더군요. 아, 자정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그 날'은 생기지 않았겠네요.

 

영화 속 내용에서 재정부 차관의 행동을 욕할수는 있으나 그의 선택 외에 대안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그 판은 빠져나올 수 없는 판이었거든요.

 

 

IMF 총재 (뱅상 카셀)

 

한국을 먹기 좋게 살을 찌운 뒤 잡아먹는 도구로 사용된 IMF의 총재로 나온 뱅상 카셀입니다. 기회만 엿보고 있다가 협상 카드를 내밀지 못하는 시기( 1997년 대선)에 맞춰서 터트렸죠.

 

과연 지금의 우리는 안전할까요? 혹시 지금도 잡아먹을때를 기다리며 살을 찌우고 있는건 아닐까요? 이 작품을 통해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윤정학 (유아인)

 

종합금융사에서 승승자구하던 금융맨으로 국가부도의 날 전에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신분 상승을 위해 위기를 이용하기로 결심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의 역할은 단 한 순간이 전부였습니다.

 

위에 나오는 장면, 왜 한국이 망하게 되는지를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부분이죠. 저 설명을 들으면 '자정능력이 발동할 수 없다' 는데 동의하게 됩니다. 왜?

 

"내가 1등인데 1등이 잘못하면 엄한 처벌을 받는 법을 만들겠니?"

 

무조건 무너지는 상황이었고 그게 외세의 이익에 의해서 결정되었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샴페인을 터트리고 누군가는 울었던 그 날. 울었던 사람이 더 많았기에 아픈 역사가 됐을 뿐입니다.

 

 

갑수 (허준호)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 집도 사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갔던 보통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바로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보고있는 '우리'를 대변합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속이 턱 막혔던 부분은 바로 갑수가 미도파 백화점과의 납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위기 대응이 도덕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찍지 않았을 그 도장을 찍었고 모두가 겪었던 그 고통의 시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극 중 한시현(김혜수)이 주장했던 내용들은 바로 갑수와 같은 사람들에게 위험을 피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경제의 체질이 잘못됐고 그로 인해서 벌도 받아야되지만 적어도 위기 상황을 알고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피해를 입게될 사람들만은 보호하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도덕적인 행동으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피해를 보게 될 사람들보다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려진거죠. 제가 갑수를 설명하는 앞 부분에서 그를 '백성'이라고 칭했던 이유입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관람 후기 결론

 

작품 자체는 114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고, 배우들은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상품의 품질만 이야기한다면 나무랄데가 없어요. 그래서 제 후기의 내용과 결론은 '재밌어요', '재미없어요'가 아닙니다.

 

누구든 꼭 한번은 보고 내가 백성인지, 국민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는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힘 있는 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버려질 백성. 왜냐하면 저는 그들이 잘못했을때 그들에게 적당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위치거든요. 그들이 만든 세상,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가야하는 백성인거죠.



사족

 

국가부도의 날의 엔딩은 한국은행 로비에서 두 사람이 마주선 상태로 끝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감독도 저처럼 사족을 붙이더군요. 갑수, 한시현, 윤정학, 재정부 차관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며 김혜수의 나레이션으로 끝이 납니다. 저는 그 나레이션의 내용을 제 식으로 적어보고 싶네요.

 

"위기는 언제나 반복됩니다. 그러니 한번 겪었다면 다시는 지지 않도록 힘을 가지세요. 날카로운 분석과 냉철한 판단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20여년 전 재정부 차관이 내게 했던 말 '네가 아무리 발악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의 뜻을 환갑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네요."

 

현대사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아직 생존해있고 그들의 보호 아래에서 이익을 챙긴 집단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잘 다루지 않습니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에 절대로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만장일치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그런 문제를 픽션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꼭 보세요. 그리고 국민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가져야되는지 생각하는 기회로 삼으세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수는 없지만 시민이 국민으로 대우받는데 한 뼘이라도 도움이 될것입니다.

 

* 상업 영화에 대한 느낀점을 적는 글인만큼 무난하게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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