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부 리뷰 _ 한 컷이 아쉬운 작품

취미|2018. 3. 10. 11:13

영화 흥부, 故 김주혁의 유작으로 알려지며 개봉 당시에 눈길을 끌었던 작품입니다. 판소리계 소설로 조선 시대에 지어진 흥부전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으로 예전에 '영화 방자전'이 생각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심심해서 틀어놨고 단 하나의 지점에서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걸 확인한 작품. '이게 왜 벌써 VOD로 나왔지? 왜 망했지?' 이런 의구심에 보다가 '아 그렇구나' 무릎을 쳐야했다. 그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후반 전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게 잘 봤다. 그럼 스틸 컷 몇 장을 토대로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을 적어본다.

 

청산유수네

 

▲ 故 김주혁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으로 지붕을 수리하며 아이들이 책을 낭독하는걸 듣고 있는 모습. 이 장면을 보는데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고 또 저렇게 살고 싶다는 욕심도 가져봤다.

 

이 작품의 배경은 헌종(1834~1849) 재위 기간으로 외척인 안동 김씨 가문과 풍양 조씨 가문의 득세로 세상이 어지럽던 때다. 왕권은 땅 바닥에 추락했고, 어린 왕은 이제 막 수렴청정을 마친 병아리였다. 이후 대한제국이 들어설때까지 민란이 끊이지 않았고, 외국의 접근이 시작되던 시기다.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조정은 탐욕에 허우적대며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던 때를 배경으로 영화가 계속된다. (작품에서는 불필요한 분란을 피하려고 '금산 김씨'와 '광양 조씨'라는 이름으로 당시 세를 떨치던 외척들을 표현했다._명량에서 도망친 장수의 후손이 문제 제기를 한 전력이 있다.)

 

글쟁이의멋짐폭발

 

▲ 인상 깊었던 글 쓰는 장면 스틸컷

 

이 작품을 보면서 시종일관 나를 사로잡은건 흥부(정우)가 글을 쓰는 모습이었다. 키보드나 펜으로 쓰는것도 아니고 종이에 붓으로 쉼 없이 써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에 작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대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하루에 한 줄도 못 쓰는 일이 태반이었던 개인적인 경험상 영화 속에서 폭풍이 몰아치듯 써내려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흥부의 궤변에 동의를 하는 부분도 있다. 문방사우를 가르키며 김삿갓(정상훈)과 농을 주고받을때 '작가가 가까이해야 할 4가지가 무엇이겠냐'는 그의 질문에 당연스럽게 붓, 벼루, 먹, 종이를 말하려는 김삿갓에게 했던 그의 답변에 동의한다. 나 또한 그 생각이니까. '술, 여자, 풍류, 상상력' 이라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작가는 신선이 아니다. 성인군자도 아니다. 그렇기에 수 많은 사람과 다양한 형태로 교류하며 다른 이의 생각과 삶을 옅봐야된다. 문란할지언정 지나치지 않고, 자기 통제가 된다면 창작을 하는 이에게 저 4가지는 필수다. 타고났다면 부러운 일이고, 배웠다면 박수를 쳐 줄 일이지. 당연히 난 정우가 정상훈에게 저 질문을 던졌을때 마음 속으로 저 답을 떠올렸다. 평소 생각이었으니까.

 

판소리모습

 

▲ 인상 깊었던 판소리 장면 스틸컷

 

이 영화는 내내 진중하다가 가끔씩 정감록, 정감록 외전, 흥부전 등을 보여줄 때 장터에 연희패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판소리 형식을 많이 사용했다. 극의 특징일수도 있고 장점일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리의 내용을 떠나서 팍팍하고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것에 주목했다. 요즘과는 다르게 그 때는 저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느 장면보다, 어떤 내용보다, 판소리를 보여주는 장면이 신났고 재미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작품의 미술팀이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생각한다. 연희패 공연, 궁의 모습, 침전의 모습, 흥부 작업실의 모습 등 많은 곳에서 고민한 흔적과 노력이 엿보이더라. 관객수 33만명 정도로 집계된 작품으로 보기에는 너무 잘 만들었고 그 1등 공신은 미술팀과 수 많은 조연들이 아니었을까? 대사 한 마디, 단독 컷 하나 없지만 판소리를 듣는 백성의 한 사람, 임금을 지키는 백성의 한 사람으로 분했던 조연 배우들이 이 작품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을 갖게한다.

 

인상적이었던씬

 

▲ 인상 깊었던 독대 장면

 

광양 조씨 조항리가 왕과 만날 때, 집필 보조가 금산 김씨 김응집을 만날 때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먼 거리를 떨어져 있고 서로 마주본 모습인데 보통 영화속에서 보던 장면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느낌이 매우 묘했다. 어색함보다 저런 공간이 탐이 났다고 해야할까? 인상 깊었다.

 

왕이젊어

 

▲ 헌종으로 출연한 배우 정해인의 모습

 

이 작품에서는 정해인을 비롯해 정진영, 김원해 등의 배우들이 연기력을 뽐낸다. 신인 급에 속하는 헌종 역할 조차도 너무 잘해서 흠 잡을 곳이 하나도 없더라. 항상 이야기하지만 요즘은 배우들 연기력이 부족해서 영화가 망하는 일은 없다. 스토리와 연출에서 갈릴 뿐이다. 특히 두 외척을 연기한 중견 배우들은 극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훌륭했다.

 

선이예쁜한국무용

 

▲ 후반에 궁에서 흥부전을 시연할때 모습

 

이 작품을 보면서 '한국의 미'가 상당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세계를 상대로 상품으로 가치가 뛰어난 문화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극 중 배우의 선이나 외모가 한 몫을 했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고유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 장면을 위에서 아래로 촬영한 부분도 있는데 정말 압권이다. 영화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지만 '문화'를 팔아야 '관광'이 될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 영화 흥부에서 아쉬웠던 한 가지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단 하나다. 박선출(천우희)과 조혁(김주혁)을 너무 쉽고 어이없이 극에서 퇴장시킨 것. 영화의 시작부터 그 시점까지 눈도 못 떼고 봤는데 조항리의 칼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부터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 뒤의 이야기는 거의 기억에 남지도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사실 난 조항리의 만행을 왕이 제지할 줄 알았는데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외척'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 그대로 극에서 두 사람을 퇴장시켰고 영화의 가치도 같이 퇴장시켰다. 이 부분만 참 아쉽다.

 

아마 머리가 좀 아파도 고민을 더 많이해서 그 부분을 잘 짰다면 이 영화가 왜 망했냐며 다들 보기를 추천한다고 적었을지도 모르겠다. 영상미도 상당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고, 판소리가 주는 현실적인 재미를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아쉬울 뿐이다. 마치 결말을 맺기 위해서 고민 없이 일을 진행시킨 느낌이다. 아마 누군가의 '용두사미' 평가는 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아쉬웠지만 그래도 한번도 끊지않고 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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