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브리다 _ 파울로 코엘료 作

일상|2018. 2. 10. 21:09

[독후감] 브리다 _ 파울로 코엘료 作

 

 

글을 쉽게 읽어갈 수 있지만,

생각은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어렵지만 쉽게 놓을 수 없는 책.

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파울로 코엘료가 누구인지 몰랐고, 소설이 무엇인지 몰랐다. 난 얼마전까지, 내가 관심있는 부분만 다룬 책을 찾아 읽었고, 작가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사실을 알아간다는 그 자체에 흥미를 느껴서 책을 집어들었다. 덕분에 난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감상 후기를 적을 때, 남들과 같은 박학다식한 문장을 끌어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감상후기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감히 말하고 싶다. 책 표지를 보고 책을 집어들었고, 미녀들의 책 수다, 하하야를 통해서 책을 접한 후 선택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접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의 앞, 뒤에 금띠를 두르고, 그 곳에는 소울메이트 라고 크게 적혀있다. 그것이 마치 이 책의 전부인양,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어쩌면 '브리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접한 브리다는 여기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브리다'는 스무살의 여주인공 '브리다'를 통해서, 그녀가 소울메이트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책 속에서도 그녀는 배움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단짝을 알아보고,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들을 보여주면서, 진정한 soulmate와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브리다'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책의 겉 표지를 감싼 단어는 어쩌면 연막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느낀것들

 

사람은 누구나 배움을 갈구하게 되고, 자신에게 정해진 무엇인가를 찾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보다는 남의 도움을 받아 명약관화하게 자신의 앞에 내던져지길 바라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이 책임지고, 자신이 선택해서, 고독과 혼란의 길을 충분히 걷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천 단계의 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서 보고 싶었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책 '브리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외면하는 자신에게 정해진 길을 브리다가 걸어가면서 느끼는 평범한 혼란과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이미 이전에 그 단계를 지나온 '마스터'라는 사람 또한 또 다른 배움의 길을 걷는 과정을 겪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배움의 끝이라고 언급되는 '마스터' 또한 그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새로운 배움을 앞에 둔다는 말이다. 책 '브리다'는 시종일관 주인공인 브리다의 배움의 과정들을 비추지만, 결국 그 끝에는 그녀의 배움으로의 입문과 마스터의 또 다른 배움으로의 입문을 모두 포함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움의 끝을 어떤 행위에 둔다. 우리나라의 경우 '취업', '입학', '졸업', '자격증' 등으로 그 행위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또 다른 배움의 시작을 의미하며, 그 단계가 좀 더 고차원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런 이유였을까?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보다는 인생과 선택, 믿음, 고독, 혼란, 의심 등의 단어에 더 많은 가슴의 고동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도 굳이 이 단어가 가슴에 남았던 이유는 그 정의를 다룬 파울로 코엘료의 사상에 이유를 둘 수 있겠다. 즉, '브리다'에서는 그 동안 내게 soulmate는 '유일'로 인식되던 의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즉, 인간이 가진 재능은 그 생명이 꺼지면서 신체가 조각나고, 그 조각들이 재능의 한 면을 품고 다른 생명을 이룬다. 즉, 한 명이 죽으면 몇 개의 새 생명으로 재능이 전승되는데, 같은 재능을 나눈 동시대의 생명들이 바로 서로의 soulmate가 되는 것이다. 이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둘 이상, 혹은 수 십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브리다'에서는 그런 사람을 둘 이상 만나는 것을 두려움과 위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울메이트 외에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인생에 대한 마법사의 설명, 그리고 브리다가 배운 내용들이다.

 

"인간은 항상 의심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걷는 존재들이다."

이 말은 '브리다' 속에서 그녀가 배움의 길을 걸으면서 가지는 끝없는 두려움과 불신, 의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의심을 하고, 그것을 이기지못해 길을 가지 않거나, 다른 길을 가거나 포기하는 등의 일들을 비추는 말이다. 누구나 의심을 하고, 확신이 있어도 불현듯 드는 불안감은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에 모두 반응해서 길을 가지 않거나 포기한다면,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했다

 

"인간들은 자신에게 정해진 바른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그래서 길을 알면서도 가지 않고, 끝없이 잘못된 길을 파괴하는데 세월을 보낸다."

이 문장은 앞 부분에 나와서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원래의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은 어렵지만, 다른 길, 틀린 길을 가는 것은 쉽다. 가다가 중간에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로 가서 시간을 보내며, 안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은 자신이 가야할 길이기에 어렵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길의 끝에 서는 두려움과 길을 걷는 동안의 혼란과 의심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다. 확신의 문제가 아닌 평범한 누군가의 모습을 그려내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고,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두려움과 혼란 의심마저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잠시 멈추더라도, 조금 속도가 늦춰지더라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자신과의 싸움을 겪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 책에서 소울메이트의 존재와 성관계에 대한 생각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과 많이 닮아있어서 기억에 난다.

 

소울메이트는 꼭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전승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소울메이트라고해서 꼭 상대방과 사랑을 나눠야 된다는 법도 없다. '감정은 야생마와 같다.'는 말이 '브리다' 속에서 꽤 많이 언급되는데 아마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전승자는, 아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책에서 자신의 소울메이트와 꼭 사랑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사랑이 야생마와 같이 가늠할 수 없는 감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소울메이트를 바라보는 시선도 두 가지로 표현이 된다. 정말 운이 좋게도 전승을 인식하기 전에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의 소울메이트였고, 자신을 도와주고 이끌어준 사람이 소울메이트였던 브리다는 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한 사람에게는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책 '브리다'는 말한다. 소울메이트와 함께 있으면 불안함이 없어지고, 즐거워지며, 편안해진다고, 그의 눈길이 자신에게 닿고, 나의 눈길으 그 사람을 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성관계는 남녀의 가장 원초적인 대화방법이다. 얼마전에 심야 방송프로그램에서 그런 대화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남편과 심하게 싸우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부부간의 대화를 나눠보려고 했다는 말, 이 대화가 바로 성관계였다. 물론, 대상에 따라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각기 다를 수 밖에 없고, 행위자들의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서 대화로 생각하지 않고, 쾌락을 얻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브리다' 속에서의 성관계는 대화의 과정이며, 교감의 과정이며, 가장 원초적이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였다. 소설이었기에 그 결과가 오르가즘을 무아지경과 환타지로 버무려졌지만, 행위를 단지 사랑을 나누는 신체 접촉에 국한하지 않고, 성스러운 의식으로 비춰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움을 느낀다.

 

이처럼 내가 바라본 이 책은 소울메이트라는 한 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의 스무살 숙녀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한 단어 보다는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부분들, 교훈들을 통해서 독자가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 생각이 정답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정답도 아니다. 모두 자신의 감정과 감성에 충실했을 뿐이고, 그 결과도 자신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를 보면서 인생에 있어서의 선택, 혼란, 의심에 대처하는 모습들을 인상깊게 봤다. 특히 문장 문장에서 느껴지는 가슴의 울림은 이 책에서 특별한 무엇인가를 얻었다는 희열을 느끼게 해줬다. 작가를 굳이 의식하지 않는 성격에,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문장을 기억하고, 나아가서 나의 소울메이트는 누구일까 라는 단순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작성하면서, 브리다를 평가한 글들을 읽지 않고, 책의 내용과 내가 느낀 점에 기대어 기억에 의존한 덕에 부정확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글이 심히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한 장의 포스팅이 내가 브리다를 읽었다는 기억의 한 면을 장식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