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Metoo 열풍을 바라보며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다.

일상|2018. 2. 21. 22:00

먼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난 당당한가?' 상대방이 느낀 '불쾌감'과 '수치심' 여부를 알 수 없기에 확신할 수 있는게 없다. 다만, 띠동갑 여자분에게 대답도 못 듣는 '만나자'는 말은 몇 번했다. 더 하면 어린 여자에게 수작을 부리는것 같아 그만해야겠다. 내가 미투 #Metoo 에 관련된 소식을 들으며 내린 결론이다. 그 분을 제외하고 거리낄만한 일은 없네. 짝사랑의 끝을 뒤로하고 요즘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주제에 대해 간단히 내 입장을 남기고자 한다.

 

미투의본질을지키자

 

왜 지금인가?

 

#Metoo 의 확산은 작년 말부터 예고됐다. 모 병원의 장기자랑에서 강제로 짧은 의상을 간호사에게 입혀서 춤을 추게 한 일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기억이 난다. 이후 엘리트 그룹으로 인식되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상관이었던 남자분에게 당했던 더러운 기억을 세상에 공개했다. 여자 혹은 남자라는 성을 가진 '피해자'들은 그 검사의 용기에 힘을 얻었다. '어쩔 수 없어 당했다'며 자조적인 기억으로 남겼던 상처가 약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당하고 있는 관행일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법을 다루는 검사도 피해자로 나오니 그 공포감은 더 심했겠지. 그래서 이곳 저곳에서 sns라는 통제 밖의 매체를 통해 급속도로 #Metoo를 확산시켰다.

 

그들은 왜 침묵했는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눈치를 봐줘야만 성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시퇴근을 하면 성의껏 30분이던, 1시간이던 좀 늦게 가는게 어른스럽고,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라며 눈치를 준다. 계속 정시에 퇴근을 강행하면 '일하기 싫구나?'라는 비아냥이 날아온다. 근무 평가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고 애사심이 없다며 노골적으로 홀대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9 to 6 인 근로계약서를 무시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약자에 대해서 자행한 '범죄'들은 묵인될 수 밖에 없다. '그 정도도 이해를 못 하나?', '농담이잖아', '그래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해?' 라는 갖은 말들을 들고 나와서 '피해자'를 사회부적응자로 몰아버리는 환경. '난' 기분이 나쁘고 불쾌한데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쳤다며 받아버리는 수 많은 '범죄'들.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월급을 받기 위해서 혹은 하고싶은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피해자'들은 법치국가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채 사람이 아니라 '이성의 생식기를 가진 고깃덩이'로 다루어졌다. 왜? 법은 있으나 그 법이 범죄를 예방하기에는 턱 없이 낮은 수위로 처벌을 하기 때문에 수 많은 '피해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지금껏 참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Metoo에 해당하는 행위들

 

아마 피의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를수도 있다. 그래서 경악할만한 구체적인 예시를 적어준다. 퇴근 이후에 사적으로 연락을 하는 행위, 업무와 관련이 없는데도 고의적으로 신체 접촉을 하는 행위 혹은 그것을 지시하는 행위, 우월적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인간의 자유 의사를 무시하는 모든 행위 (모 병원의 장기자랑, 모 항공사 회장에게 포옹하기 등), 이성 친구에 대한 질문, 잠자리에 대한 대화, 업무와 관련없는 의상 지적 등이다. 물론, 노골적인 행위들은 100% 해당되지만 누가봐도 범죄로 보이기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뺐다. 

 

#Metoo 열풍이 시사하는 바

 

여성 혹은 남성이 경험한 부당한 부분들은 논외로 친다. 다만 이 #Metoo 열풍이 시사하는 바는 다른데 있다. 첫번째, 대한민국은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나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 두번째, 노동자의 권리와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제대로 작동 않는다. 세번째, 국민을 위해서 만든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난 이 세번째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 적어도 불편부당한 상황을 강요받았을 때 '너 고소', '나 퇴직' 을 외치며 당당하게 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사회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만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외칠 뿐 사실상 노예와 같은 삶을 국민에게 요구하는 현실에서 수 많은 약자들은 고작 #Metoo를 외치며 #Withyou에 위로를 받고 있다. 표 받기 바쁜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제발 '일 좀 하자.'

 

법은 범죄에 대한 처벌을 목적으로 발생한게 아니다. 범죄의 예방을 위해서 발생했다. 그러나 우리는 '금전과 관련된 문제'와 '인권과 관련된 문제', '성(性)과 관련된 문제'는 처벌이 매우 가볍다. 그래서 '약자'에게 행해지는 수 많은 범죄들이 근절되지 않는다. 유명인들의 경우 문제가 되면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경미한 처벌을 받고 생활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 처벌이 약한지는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다. (차마 그것까지 적으면 일이 커진다.)

 

미투 열풍의 미래

 

미안한 말이지만 이 일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게스트하우스 정도의 문화조차 정착하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다. 지금 잠깐 뭔가 바뀔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바뀌는게 아니다. 최소한 제정되어 있는 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수준의 국격은 되어야만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솔직히 만 년이 지나도 한국에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지. 왜냐하면 지금 소위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만 나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피해자들의 아우성이 결국 또 다른 '갑'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는 메시지만 주는게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열풍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의 싸움이 아니라 일정 지위에 오른 자가 휘두르는 권력이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썪어빠진 사회 구조다. 연극판의 대선배라는 어느 연출가가 연기자의 배역을 쥐락펴락하는 그 더러운 판, 배우 출신의 교수가 자신의 오피스텔에 어린 여학생을 불러도 괜찮은 그 비열한 판, 문학계의 거장이라는 이유로 그 옆에서 술시중을 들고, 몸을 부벼야되는 그 판, 일상 생활 속 흔하디 흔한 그 판들. 나와 상관없으면 고작 '나이든 것들' 밖에 안되는 존재들인데 누군가에게는 '내 인생을 결정지어줄 힘을 가진' 신과 같은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그 사회구조. #Metoo를 넘어 그 구조를 박살낼 의지를 가져야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위로부터가 아니라, 법의 제정으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실천적 행동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밥 먹고 살아야되는 입장'에서는 요원한 일이지. 안타깝고 아쉽고 씁쓸할 뿐이다.

 

#Metoo를 바라보는 내 본심

 

솔직히 내가 속했던 곳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한 적이 있으나 피해자가 싫은 티를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나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싫은 티를 냈을 때 난 피의자의 뺨을 후려 갈겼다. '어린 놈이 낙하산 타고 내려와서 고작 한다는 짓이 그 따위야?' 라는 말과 함께 대표에게 니 낙하산 내가 좀 패겠다고 말하고 한 대 때렸지. 그 외에 어린 직원들에게 '영계같다'고 한 다른 직원에게 '그거 성추행이다'며 면박을 주는 정도는 해봤다. 그 외에는 여자분이 웃으며 넘기는데 딱히 뭔가를 하기는 어렵더라. (수위 자체가 상당히 애매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이번 #Metoo 열풍을 보면서 열을 내지는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뒤집어 엎어야되지만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내 사람, 나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만은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정상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같이 노력하고 싶다.는 욕심만 가져본다. 적어도 내 사람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내가 모든 수단을 총 동원한다면 피의자의 인생 정도는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정의로운 사회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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