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선택에 해당하는 글 2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극단적인 선택은 씁쓸할뿐이다.

일상|2018. 7. 24. 18:22

어제 뉴스를 접했다. 드루킹, 경제공진화모임으로 이어진 수사에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거론되고 4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귀국 후 극단적인 선택을하고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한 인정, 적절한 대처를 못한데 대한 후회를 적은 유서를 남겼다. 난 이 일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적고자 한다.

 

* 먼저 저는 진보에 가까운 정치 성향을 지닌 한 명의 유권자입니다.

 

* 제가 생각하는 진보란 사유재산의 절대적 가치 추구와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영리추구를 정당한 법과 제도를 통해서 관리하고 감독하려는 정치 집단입니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인간의 이익 추구 본능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집단입니다. 이 외에 안보, 복지는 보수와 진보 모두 관심을 두고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며 이 두 가지 가치로 두 진영을 나누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의 정치가 미성숙한 단계임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 복지와 포퓰리즘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빈곤층에 대한 복지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진행하고 대다수 국민이 누리는 삶의 질을 높이는 보편적 복지는 퍼주는게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와 포퓰리즘은 다르고 그것이 진영을 가르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영이 어느쪽이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는 신경써야되며 보편적 복지는 각 진영을 지지하는 당사자들을 대표하는 정치집단인 이상 상대방과 토론과 합의, 타협을 통해서 적정한 수준으로 집행되도록 유도해야됩니다.

 

* 마지막으로 복지는 쎄쎄쎄가 되면 안됩니다. 나도, 너도 절대로 양보 못하니까 기한 넘기기 전에 중간값으로 합의하자.는 방식은 정치가 아닙니다. 타협도 아닙니다. 그냥 권력을 갖고 장난치는겁니다. 사회가 어떤 체제를 갖췄든 이런 행태는 가혹할 정도로 강력한 처벌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로 저는 고인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이 글은 고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동일한 내용으로 작성되었을겁니다. 위에 몇 줄은 제가 갖고있는 미숙한 가치관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담았습니다.

 

사실 이 글을 적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야했습니다. 정치라는것이 본디 양보와 타협이 어려운 가치관의 문제니까요. 옳고 그름도 없고 선과 악도 없는 오직 가치관의 대립일뿐입니다. 또 수 천만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는 목소리이기때문에 한 쪽의 편을 들면 다른 한 쪽의 뭇매를 맞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블로그라는 사적인 공간에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는게 매우 위험한 짓임을 알면서도 이 글을 남깁니다.

 

이 글은 평소에 제 생각입니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극단적인 선택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이유를 갖다 놓아도 잘못한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이든, 부덕한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수사기관에 협조해서 조사를 받고 사건을 세상에 공개하는데 일조했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는 극단적인 선택은 책임을 지는게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법과 제도 아래에서 사회적으로 약속된 벌을 받는 것입니다. 고인의 선택은 정치인으로서는 하면 안되는 결정이었습니다. (수사기관을 무시했고, 그 과정을 방해했으며, 국민들의 알권리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국민으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대리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것입니다.) 

 

물론 여러가지의 상황에 따라서 이 일이 가짜뉴스와 조작된 덧글, 진영 논리에 휩싸인 누리꾼의 감정적인 반응 등으로 진흙탕으로 변했겠죠. 하지만 그래도 고인은 공권력과 사법부 아래에서 끝까지 서 있어야 했습니다. 미성숙한 정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논란과 설전, 후유증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은 그것에 포함되겠죠. 현역 정치인, 국민의 표를 받아 입법권을 갖게 된 대리인에게 요구되는 희생 중 하나입니다. 고인은 그 의무를 인지하지 못한채 자신의 양심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답답하고 씁쓸한 현실입니다. 

 

이번 일을 기회로 최근 몇몇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잘못된 방식으로 책임지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목숨을 끊거나, 미국을 가거나, 초야에 묻힌다거나, 국민이 보는데 유권자의 자질을 운운하며 정계와 거리를 두는 방식은 정치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정치인은 진흙탕에서 뒹굴고 싸워서 자신의 목소리를 국민이 들을 수 있게 외쳐야합니다. _ 누구도 그 판이 정의롭고, 깨끗하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백로를 자처한다면 정치인가 아니라 학자로 살아야됩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극단적인 선택에 씁쓸함과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하나의 생명의 무게는 100명의 무게와 동일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렇기에 고인의 죽음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고인의 선택은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우리들에게 권리를 위임받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인은 제가 생각하는것과는 다를지도 모릅니다. 누리는 자리일뿐 책임지지 않은 자리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제 가치관을 믿습니다. 그래서 진영이나 개인의 성향을 떠나서 고인의 선택에 대한 글을 남겼습니다.

 

고인의 죽음은 좋은 기회를 날리게 만들었다.

 

경공모로부터 40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았을때 고인은 국회의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후원 절차를 밞을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답니다. 현역이 아닌 사람이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시기는 오직 선거기간 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내용의 진위여부는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자금법은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무죄를 주장하라는게 아니라 진흙탕에서 싸우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회 구성원이 문제의식을 갖도록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고개를 틀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 정치자금법 자체는 후원금, 기부금 내역과 지출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강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고인이 받은 4000만원이 정상적인 절차를 밞아서 후원금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이미 투명성과 신뢰성은 잃게 됩니다. 그래서 무죄를 주장하는건 무리가 있죠. 다만 자신의 선택이 제도의 문제였다면 그에 대해서 세상에 외쳤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입니다.

 

고인의 죽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나 무지한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는 정치인이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yes만 외치기를 강요하는 부패하고 무능한 문화보다  yes 와 no 사이에 갈등과 대립, 분란을 통해서 좀 더 나은 답을 찾아가려는 문화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니 제발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 국민은 투표를 통해서 권리를 행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정치인은 무엇을 통해서 권리를 행사하고 어떤 형태로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이번 일을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무지한 유권자의 개인적인 잡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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