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민에 해당하는 글 1

김생민 미투 사건에 대한 반응이 참 씁쓸하네요.

일상|2018. 4. 6. 16:32

김생민의 영수증

 

작년 말부터 광풍을 일으킨 스튜핏, 그뤠잇 바람의 주인공 '김생민', 통장요정이라는 독특한 닉네임으로 팍팍한 삶에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지친 대중에게 인기를 얻어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의 프로그램을 단 한번 본 후로 다시는 시청하지 않았다. 왜? 그의 집과 차를 알게되니 '희망고문'일 뿐인 내용만 가득한 그 방송이 못내 꼴보기 싫었다. 한 달에 복권 몇 장 사는걸 갖고 '가능성이 희박한 곳에 단 돈 천 원이라도 낭비하는건 어리석다'며 스튜핏을 부르짓던 프로그램의 내용은 참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삶'이 빠진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행사와 프로그램을 하는 '방송인'과 달리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중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야근과 특근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삶'을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상이 가능한 월급 생활자에게 단순히 저축만으로 수 십억대의 타워팰리스 아파트와 벤츠 S 클래스가 가능한가? 난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공감할 수 없었다.'는 핑계로 '김생민의 영수증'을 시청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말빨'로 포장해서 돈을 버는 수단으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았다. 정작 그들이 돈을 모은 비결은 다른 것일텐데 오로지 저축, 투잡, 쓰리잡, 포잡을 외치며 열심히 산다며 '그레잇'을 외쳐대는건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아마도 그의 이름으로 미투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내게 김생민은 그저 돈 버는 방법을 잘 아는 리포터 였을텐데 내 기억의 마지막 페이지는 참 어둡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악착같은 짠돌이든, 자수성가한 사람이든 결국 결혼을 하고도 책임감은 밥 말아먹고 지위와 지배구조를 이용해서 여성을 유린하는건 다르지 않구나 느낀다.

 

김생민 미투 전말

 

내가 기사를 통해서 접한 미투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10여년 전 쯤 그가 참여했던 프로그램에 스태프와 출연자가 회식자리를 가졌다. 그 중 노래방에서도 회식을 했는데 술에 취한 김생민이 다른 방에서 여성 스태프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단 둘이 있는 그 방에서 추행을 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완강히 거부하자 더 이상 일을 진행하지 않고 회식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제 3자가 피해자의 속옷 끈이 풀린걸 보고 말을 해줬다고 한다. 이후 피해자는 회사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조치를 요청했으나 처리되지 않았고, 김생민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잘못한게 없다'는 이유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이 사건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참담하다.

 

블로그와 기사의 덧글을 통해서 본 여론의 반응은 의외로 따뜻하다. 참담했다. 더 잘못한 사람들도 입 다물고 버티고 있는데 이 정도 일에 너무 집중하는건 온당치 못하다는 반응들이 꽤 많았다. 여론 스스로 2차 가해자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피해자 입장에서 더 잘못하고 덜 잘못한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 반응들을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글을 적는다.

 

10년 전에는 왜 신고하지 않았나?

 

난 이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많다는데 놀랐다. 모르나? 모르는척 하는건가? 동료 여직원이 추행을 당했다고 하면 '뭘 그런 일로 분란을 만드느냐'며 핀잔을 할 사람들이다. 혹시 모른다면 한번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지만 방송사의 경우 상당히 폐쇄적입니다. 또한 전문가 수준의 지위와 페이를 보장받지 않는 일반 스태프의 경우 하고 싶어서 그 일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봉에 열악한 근무 환경이지만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위에 피해자가 당시에 사건을 크게 부풀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100% 가해자가 이깁니다. 그와 동시에 피해자는 직장을 잃고 동종 업계에는 취직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사소한 일로 분란을 만들어 직장 분위기를 흐리는 애'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입니다. 자신 혹은 자신의 딸이 당한 일이 아니기때문에 '참고 넘어가라'는 말을 하는 사회입니다.

 

또 학교, 기업, 관공서 모두 동일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할 생각보다는 밖으로 문제가 불거져서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더 염려합니다. 상급 기관에서도 그런 문제가 잘 해결되었는지 확인하는게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지원을 줄이고 제제를 하려는 풍토가 강합니다. 그렇다보니 조직도 개인도 모두 다 참아야만 하는 상황이 깊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을' 입니다. 방송사 스태프로서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프로그램에 섭외되서 출연하는 사람과의 개인적인 문제로 시끄러워지면 조직이 타격을 받기때문에 입을 다물게 됩니다. 아예 동종업계에서 퇴출될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신고나 폭로는 하기 어렵습니다. 인생을 걸어야 할 문제가 되니까요. 그게 10년 전에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넘어간 이유입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가 욕 먹어야 하는 이유다.

 

이 사건에 대해서 피의자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이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 정도 일' 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일겁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바로 신고하지 못하고 10년이 지나서 익명으로 제보를 통해서 미투 폭로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욕 먹을 일'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생민은 애초에 피해자가 자신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상황과 자신의 지위를 이용) 추행을 한 것입니다. _ 정확하게 말하면 관계를 하려다가 실패한 케이스 입니다. 이는 미투의 본질에 맞는 폭로입니다.

 

미투에 거론되는 거의 모든 연예인들은 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타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 일 이후로 안 보고 살면 괜찮을텐데 직업 특성상 방송에서 계속 나오니까 결국 폭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폭로자가 익명인 이유를 추측해봅니다.

 

어떤 분이 덧글로 '폭로를 한 사람이 경찰서에 신고를 하지 않고 익명으로 제보만 한 것은 뭔가 냄새가 난다. 만약 김생민이 지금 인기를 얻고 잘 나가지 않았다면 그랬을까?' 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일단 위에 언급한대로 김생민이 돈 잘 벌어서 알아서 잘 살았으면 폭로를 하지 않았겠죠. 뜨면서 광고에 방송에 여기저기 출몰을 하니까 심장이 콕콕 쑤셔서 폭로를 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요즘 미투 열풍도 불고 있는 상황이니까 딱 좋은 타이밍이죠.

 

그런데 왜 익명에 신고도 하지 않을까요? 생각을 조금만 해보면 쉬울텐데 아쉽습니다. 방송사 스태프, 여성, 유명한 연예인도 아닌 리포터가 다른 방에 불러서 강제로 하려고 마음먹은 상대라면 20대 초중반이었을겁니다. 메인급 스태프는 못 건드릴테니까요. 그럼 지금 30대 초중반이겠죠. 결혼해서 가정도 있을겁니다. 한 가정의 '엄마'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김생민이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고 뭘 얻나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잊으려고 했겠죠. 그런데 잘 먹고 잘 사는건 그렇다 생각하겠는데 자꾸 TV를 틀면 나옵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역겨운 것일텐데 자꾸 나옵니다. 웃는 얼굴로 스튜핏, 그뤠잇을 외치고 있습니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10년전 그 사건을 폭로했겠죠. 하지만 그 일로 경찰서를 다니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자신을 강제로 범하려고 했던 사람이 천사처럼 인식되는게 싫었을뿐이었을겁니다. 저라도 저렇게 했을겁니다.

 

우호적인 반응은 자제합시다.

 

남자가 술에 취했다고 여자에게 갑자기 '자자'고 덤비는 일은 없습니다. 미투에서 거론되는 행위들은 대부분 평소에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여성을 대상으로 술에 취하면서 생겨난 '자신감'과 우월적 지위, 관행에 기댄 '해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발현되는 폭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마음으로만 '호감'이든 '욕망'이든 품고 끝냈던 일을 술이 들어가면서 실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자신의 우월적 지위와 얽혀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과신하면서 상대방을 인간이 아닌 고깃덩어리로 보게되면서 발생하는 폭력입니다. 그 폭력을 꾸준히 행사했던 사람들은 점점 파렴치해지고 역겨워 보이는것 뿐이고 어쩌다 한번 '한심한 용기'를 낸 사람들은 '실수'로 비춰질 뿐이지요. 하지만 이런 일에 '실수'는 없습니다.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런 종류의 사건은 한 번으로 인생이 박살나도 할 말이 없어야됩니다. 사회 인식도 그렇게 자리를 잡아야됩니다.

 

마치면서

 

전 올바른 성인식을 가진 어른은 아닙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고 상대방과의 합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서로를 탐닉하고 즐겨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쾌락을 절제하고 살아갈 필요는 없는겁니다. 매매에 대해서도 파는 쪽이 강제로 동원되는게 아니라면 그 또한 상거래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지요. 다만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결혼과 합의. 둘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추행이든 매매든 관계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짓을 자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보호막도, 핑계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렇다고'좋은게 좋은거'로 쓸 수도 없는 일이라서 강하게 적어봅니다.

 

왜 이런 강한 글이 나오는지 이해가 안되시면 상상해보세요. 자신의 딸이 20대 초반에 직장 상사가 '고용'을 무기로 딸의 옷을 다 벗기고 강제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걸 상상해보시면 가해자를 옹호할 수는 없을겁니다. (위계나 강제에 의한 합의 혹은 합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나 추행은 사람을 납치해서 업장에 팔아넘기는 일보다 더 나쁜 짓입니다.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제가 미투 글을 올리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 힘 없는 사람,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걸 잊어버리고 고깃덩어리로 생각해서 성과 관련된 폭력이 자행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 그들은 용서받을만한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 왠만하면 미투 글은 올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몇몇 반응을 보면 제 생각과 달라서 굳이 시간을 내서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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