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해당하는 글 2

남자가 늙어가는 모습에 대한 생각입니다.

일상|2018. 3. 31. 17:58

서른 여덞, 싱글, 프리랜서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는 남자입니다. 본가에서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내가 평범한 직장인, 내 가족의 가장이었다면 아버지, 어머니와 이런 시간, 이런 대화들을 나눌 수 있었을까? 마음이 맞고 가족이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그렇게 생각되네요. 문득 남자가 늙어가는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적고 싶어졌어요. 제게 최근 몇 일은 그런 경험이 많았답니다.

 

적이었던 아버지가 이해된다.

 

남자가 늙어가면서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내 모습에서 아버지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실감되는 시기죠. 어릴적에는 어머니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폭군에 가까웠습니다. 때리고 욕하는 일이 다반사였죠. 그때는 정말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대략 서른 쯤까지 그랬던것 같네요. 그러다 내게서 그의 모습을 발견했을때 조금씩 이해가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이 잘못됐지만 적어도 '왜' 그랬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더군요. 요즘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격투기 경기를 고집스럽게 시청하는걸 보면 싫다는 생각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많이 됩니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이제 좀 아버지와 대화를 하게 된 아들이 이런 글을 적습니다.

 

부모님께 그늘이 되어가는 모습이 남자가 늙어가는 모습이다.

 

비단 남자로 한정해서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제가 남자이기에 이렇게 적어봅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서 부모님이 다루기 힘든 가전기기들 사용법을 알아내서 알려드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께 사드린 세탁기 사용법을 알려드렸네요. 좋은 제품이지만 구형 제품처럼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냥 그것만 하던 제품들이 아니라서 많이 어려워하셨거든요. 이런 전자제품들 문제는 전문적인 사항은 아닙니다. 그저 헹궁+탈수 버튼만 있어서 탈수만 되면 좋겠다는 어머니 말에 이것저것 눌러보며 방법을 찾아서 알려드리는 정도의 일들입니다. 같이 살지 않기에 전화로는 설명이 어려운 일이 많은데 가까이 지내다보니 이런 일이 많아지네요.

 

오늘은 특히 더 그랬습니다. 강력했던 모습이 전부인 아버지가 바닷일을 하는데 힘들어하시고 집안일에 미숙해서 별로 도움이 안되던 몸치 아들은 어느새 두 분의 일손을 덜어드릴 정도가 됐습니다. 아들의 체력이 넘치는게 아니라 부모님의 체력이 떨어지셨기에 가능해진 역전 상황. 마냥 기분 좋다며 떠들수는 없지만 내년에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겪으면서 어느새 내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어느새 나는 그분들의 그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자립을 하면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면) 제대로 된 그늘이 되어드리고 싶다는 욕심도 가져봅니다. 비단 부모님만이 아닌 내가 곁에서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그들에게도 좋은 바람막이, 그늘, 우산이 되어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어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마흔을 코 앞에 둔 아직 덜 자란 아들로서 미안함이 많지만 그래도 이 욕심은 꼭 이루고 싶네요.

 

아버지께 잔소리하는 아들이 되어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담배를 배웠습니다. 안 가도 되는 상태였지만 피하기만하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겠다 싶어서 자원입대를 했죠. 의지만큼 상황은 녹록치않았고 결국 군디스에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1~2갑의 담배를 피우고 있답니다. 이에 대해서 담배를 끊은 아버지와 장가도 못 간 아들이 안 좋은것만 하는게 탐탁치않은 어머니의 잔소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아버지가 버스에서 내리다가 주웠다며 새 담배 한 갑을 건네십니다. 집에 일하러 왔을때 담배가 떨어지면 제가 많이 예민해지는걸 아시기에 미리 준비하신것 같네요. 그 상황에서 고맙다거나 민망하다는 생각보다 제 뇌리를 스친건 '점유물 이탈 횡령'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담배를 건네는 아버지께 '길에 떨어진거라도 함부로 줏어오시면 안되요. 요즘은 법으로 막아서 자기것이 아니면 길거리에 떨어진것도 건드리면 안되요.'라며 신싱당부를 했습니다. 하고보니 머쓱해지더군요. 고작 담배 한 갑인데 굳이 이런 말까지 해야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의성 없이 아버지가 살아오신 방식대로 줏어오셨다가 봉변을 당할까 싶어서 잔소리를 하게 된 상황이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점점 이런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나이듬에 따라 부모님이 제 눈치를 살피는 경우가 생기고 저 또한 부모님께 잔소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그 문제로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는 없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르시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드리되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점점 서로가 서로의 감정에 신경을 쓰게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나도 늙어가는구나', '부모님도 늙어가는구나', '늙어가는것이 나쁘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하고 있답니다.

 

늙어가는 과정에서 바라본 결혼의 의미

 

어릴때는 몰랐지만 중년의 문턱에 서 보니 '결혼'이 다르게 보입니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이가 가장 아름답더군요. 최근에 제 주변에서 결혼을 한 커플이 2쌍 있습니다. 20대 커플과 30대 커플인데 둘 모두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서로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다른 이에게서 찾을 수 있는 사이였다것입니다. 이는 물질이니 돈이니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서적, 환경적으로 각자가 갖지 못했던 부분을 상대방에게서 채우는 관계였다는 뜻입니다. 이제 결혼이 그런 의미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20대 커플의 결혼이 많이 의미심장했습니다. 미리 인사를 드린다고 찾아왔을때 느낌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젊은 여자가 저희 집에서 저희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애교를 부리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예비 신혼부부의 상황은 이미 짐작이 되는지라 더 예쁘고 묘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전 이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라 어렵지만 결혼은 나이차가 크지 않으면서 마음이 맞고, 상황이 맞고, 서로의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20대에 겁없이 하는게 제일 좋은것 같아요. 그 커플을 보면서 저도 잠시 '연애'라는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너무 예뻣거든요.

 

둘이 열심히 모아서 전세집을 얻고 서로 의지하며 하나하나 살림살이를 장만해가는 모습을 알고 있었던지라 더 그랬던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커플 모두 그렇게 결혼을 했고 제 눈에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이로 보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쪽은 항상 뭔가 부족했는데 그걸 상대방이 갖고 있더군요. 그게 서로가 의지하게 된 이유겠구나 싶었어요. 어쩌다보니 이제 그런게 보이더군요. 참 아무것도 안하고 나이만 먹어도 이렇게 되나봅니다.

 

개인적으로 그 두 커플은 오래도록 알콩달콩 마음에 쌓아두는 걱정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결혼이 어느새 제게 그런 의미가 되어버렸네요. 부족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 의해서 내가 치료되고 그 사람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관계를 좀 더 책임감있는 형태로 발전시키는 과정이랄까요?

 

결혼은 사랑 이전에 책임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지라 적어봤습니다. 제 주변에 결혼제도는 잘못된 관행이라며 자유연애주의를 입에 담는 유부남이 있거든요. 실제로 몇 안되는 지인들 중에 바람을 피우는 남자와 여자가 꽤 많습니다. 물론 다 차단시켰지만 씁쓸함은 남더군요. 돈에 메어서 가족도 살피지 못하는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물론 세상은 그 사람들에게 능력있고, 멋지고, 남자답고, 당당한 사람이라고 가산점을 준답니다. 그런 경우를 자주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해서 더 큰 무게를 두게 됩니다. 결혼은 '책임'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적어봅니다.

 

이렇게 늙어가는게 괜찮을까에 대한 걱정은 접기로했다.

 

이제 저는 혼자만 애태우던 짝사랑은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고백을 못할거라면 좋아하지 말아야죠. 시간낭비, 감정낭비일 뿐입니다. 그래도 아직 마음이 쓰이고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대부분 짝사랑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늙어가는게 맞는걸까?에 대한 고민이죠. 극단적인 생각을 떠올리기도 할 정도로 제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일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결혼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눈 앞에 있는 상대에게 마음을 쓰자. 상상속의 천사에게 현실의 내 시간을 쓰지는 말자. 아무것도 없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중년이 되도록 노력하자. 늙어가는 걱정보다 멋지게 늙어갈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부모님과 내 사람들에게 좀 더 좋은 일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좋은 목표를 향해서 쓰면 언젠가 제 앞에 설 누군가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겠죠. 그래서 결론도 없는 걱정은 그만하기로 했답니다.

 

38세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나이는 아니지만 제 삶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기에 이 기회, 이 다짐을 남길 기회로 글을 남겨봤습니다. 나름의 최선이 아닌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최선을 실천하는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해야겠어요. 부모님의 든든한 그늘이 되고, 내게 당당한 내가 되고, 내가 사랑하게 될 누군가에게 위로와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건강한 남자'가 되려는 노력을 생각해봅니다.

 

그냥 저는 그런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 사람들을 위해서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할 뿐이죠. 30대 초반까지는 '내가 편한 길'만 찾았는데 이제는 '내 마음이 편한 길'을 찾게 되네요. 그게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은 확신합니다.

 

여기까지 오늘 본가에서 바닷일을하며 아버지, 어머니를 보고 생각했던 것들과 개인적인 평소 생각들을 적어봤습니다. 정답은 아니지만 오답도 아니기에 이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제게 좋은 영향을 주는 시간이었기에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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