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민주화에 해당하는 글 1

영화 1987 _ 2개의 민주화를 위한 전주곡

취미|2018. 3. 17. 20:49

작년에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 1987을 이제서야 봤습니다. 이미 다 알고있는 내용이었기에 굳이 볼 이유가 없었죠. 해방 직후부터 7공화국까지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미루다가 오늘 오후에 봤네요. 역시 내용은 그저 그랬습니다. 각 캐릭터가 등장할때마다 뚝뚝 끊어지는 전개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많이 순화해서 보여주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네요. 그럼 제가 이 영화를 보고 했던 생각들을 적어볼게요. 영화 내용은 고증을 거쳐서 잘 만들었으니 교과서라고 생각하고 보면 됩니다.

 

영화1987포스터

 

▲ 영화적인 재미보다 등장인물 각각의 이야기를 심도있게 담으면서 다큐멘터리 느낌을 담았던 작품다운 포스터. 어쩌면 '그들 모두 주인공이었다'는 문구가 영화속에 그대로 담겨있는듯하다.

 

대략적인 내용

 

영화 1987은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의 일을 차례차례 보여줍니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었던 민주화 운동, 이를 탄압하기 위해서 법 위에 치안본부를 두고 정치적 위협이 되는 세력들을 불법적으로 제거하는 군부. 그 속의 언론과 공권력, 그리고 법의 모습을 다양한 실존 인물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은 분위기죠.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이한열 열사 사망까지 이어지면서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민주화의 탄생 배경

 

여기서 주의깊게 봐야할 점은 저 일이 그렇게 번질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김윤석이었다면 박휘순을 시켜서 당시 의사와 간호사를 제거했을겁니다. 그리고 시신을 아무도 모르게 묻어버렸겠죠. 그럼 일이 이렇게 번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이미 그 당시에 전두환 대통령의 기반은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극 중 박휘순이 '우리가 진짜 애국자냐'며 김윤석에서 반항한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그게 당시 법 위에서 서 있던 조직의 내부 붕괴를 말합니다. 그 상황에 1988년 서울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고 대외적으로 평판에 신경쓸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9차 개헌이 이루어집니다.

 

대공수사처조반장포스터

 

▲ 그의 반항은 성장하고 있던 시민의식과 세계적인 변화에 밀려 낙마할 수 밖에 없었던 전두환 정권을 표현한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 상황에 불씨가 되어 6.29 선언을 이끌어낸 것이 영화 1987의 이야기다.

 

9차 개헌의 의미

 

1987년의 일을 통해서 결국 전두환 정권은 두 손을 들고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 국정감사법 부활 등을 골자로 하는 9차 개정헌법을 쟁취하게 됩니다. 그때까지는 국민들의 수준이 직선제를 진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장충체육관에서 선택된 유권자 소수만 모여서 거수를 통해서 대통령을 채택하는 간선제였거든요. 그래서 국회의원들을 비하할 때 거수기라고 하는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들은 그런 역할이었거든요. 그래서 국회의사당에 의자가 넓고 편안하게 장만되어 있습니다. 정해진 사람을 뽑아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말라는 뜻이었죠. (아직도 국회의사당에는 넓고 편안한 의자가 있어서 문제랍니다.)

 

6. 29 선언이 나왔을때 당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 숨죽이며 지켜봤던 국민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김대중, 김종필, 김영삼 셋 중에 한 명이 대통령이 될거라고 확신했죠. 하지만 야당 3인은 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여당에서 출마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썰전에서 우상호 의원이 당시 기억을 회상하며 '처참했다'고 표현을 했답니다. 노태우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죠. 사실상 6.29 선언 이후로 10년이 지나서  IMF가 터진 뒤부터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영화 1987을 통해서 감성적인 분노를 느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이 불씨가되어 현재의 정치적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지만 그 과정은 참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 현재도 완성형이 아닙니다. 사실상 한국의 정치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습니다. 감성적으로 분노하기보다 이성적으로 계산하는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배우우현학창시절모습

 

▲ 배우 우현씨는 당시에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학생이었고 지금은 영화 속 치안본부장역을 맡았다.

 

위 사진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당시에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분노하고 책 대신 화염병을 들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 군부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부르짖던 학생들은 50대 어른이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30년전 아버지 세대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꼰대'라고 부르는 어른들은 부당한 세상을 향해서 저항했던 세대들이다.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세상을 바꾸는 외침은 뛰어난 소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평범한 다수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분노한언론의모습

 

▲ 경영측면에서 독립된 사기업이었던 언론사는 검열과 보도지침에 굽신거렸지만 나서야 할 때는 지식층으로서 불같이 일어났다.

 

영화 속 언론 VS 현재의 언론

 

2018년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은 언론을 '기레기'라고 부릅니다. 목적을 가진 편파적인 기사만을 쓰는 사례를 많이 목격했잖아요. 그런데 영화 속에서 보여준 언론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당시에는 신문 판매금액이 광고를 통해 들어오는 수입보다 많았습니다. 1990년대까지만해도 신문 판매액과 광고수입이 비슷했죠. 그래서 남의 말에 휘둘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자라는 직업은 대표적인 '인텔리' 였던 때였답니다. 물론 당시에는 군부독재 시절이기때문에 '보도수칙' 같은게 존재했고 기사 검열도 있었지만 그래도 분노를 해야할때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조직이었습니다. 왜? 돈에서 자유로웠거든요. 학생과 함께 민주화를 앞당긴 주역들이 바로 언론입니다.

 

현재 언론사의 수입 중 광고와 신문판매 비율이 9:1 정도 됩니다. 기업이든, 기업에게 힘을 쓸 수 있는 정부든 함부로 마음껏 비판할 수 없죠. 검열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도수칙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다음 단락에서 말하겠지만 '돈'의 위력입니다. 기자정신으로 세상을 향해 펜대를 들다가 가족이 굶어죽습니다. 인생을 걸고 반항할 결심을 해야되는 상황이지요. 그래서 현재의 언론은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생활이 안될 정도로 어려웠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돈'은 엄청나게 무서운 놈이거든요. 

 

당시국민의분노모습

 

▲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던 그 날의 광장은 이제 또 다른 목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 후기의 제목이 2개의 민주화다. 하나는 1987년의 희생이 불씨가되어 세상을 바꾼 정치민주화, 또 하는 경제민주화다. 누군가의 희생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1991년 12월 25일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함께 이데올로기 경쟁 체제는 종식되었다. 그와 함께 경제 전쟁이 발발했고 현재에 이르렀다. 투박하기 그지없던 군부독재와 이념 대립은 모두를 숨죽이게 할 수는 있었지만 모두가 반항할 수 있는 여유도 함께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시위를하고 언론이 탄압에 맞서가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 전쟁 시대로 들어서면서 학생도, 시민도, 언론도 모두 숨을 죽이고 있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다.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굳이 잡아가지 않아도,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살기 바쁜 국민들만 보인다. 왜? '돈'으로 생활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었으니 표면적으로 분노할만한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다. 또 IMF를 통해서 누군가 희생할때 누군가 자산을 불렸던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돈은 조물주보다 무서운 건물주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돈', 군인과 총, 칼보다 더 무섭지만 지배층 입장에서는 참 편리하고 효율적인 무기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계에 등장해버렸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관계, 심지어 기업과 기업,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도 '돈'이라는 무기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잡음은 없고, 종속의 위력은 최상급 티어의 최강의 무기인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세상에 살고있다.

 

만약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종이 신문을 각 가정이 구독을 하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된다면 어떻게될까? 여전히 권력에 빌붙고 기업에 빌붙어 생계를 유지하는 언론사들은 남아있겠지만 '제 목소리'를 내려는 지식층이 모인 언론사도 운영될 수 있다. 그렇게되면 언젠가는 국회, 국회의원 개개인이 임기 동안에 무슨 일을했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정리해서 공표하는 단체도 생길 수 있지. 그럼 국민들은 투표를 할 때 색깔, 당, 여론에 이끌리지 않고 소신에 의해서 작성된 자료를 보고 선거를 치르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먹고 사는 문제만 권력과 돈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면 '사명감'을 갖고 진실을 알리고 부정을 규탄하는 보도를 하는 언론사들이 생겨나겠지. (이건 내가 대학생때부터 꿨던 꿈이다. 물론 지금 적는 이야기도 십 수년전부터 블로그에 적던 뻔한 레파토리다.)

 

'돈'이 쥐고 흔드는 권력은 무력보다 강하다. 1987년 6. 29 선언을 통해 불을 지핀 정치 민주화가 미디어의 발달과 시민의식의 성장으로 완성될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 지금 우리는 경제 분야에서도 민주화를 이루려는 의식이 필요하다. '결과의 평등'을 말하는게 아니라 '기회의 평등', '법 앞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저 보편적 가치를 이제 현실에서도 이루어야 할 때가 되었다. (영화 속 배경에서 법이 없었는가? 아니다. 작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의 문제도 똑같다.) 우리는 지금 경제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를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 1950년대, 1980년대의 좌와 우의 의미는 2018년에 그것과 다르다. 그 때는 이념의 시대였고 지금은 자본의 시대거든. 그래서 김윤석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2980년대의 그의 태도는 이해가 되는 행동이다. 북에서 지주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이루어진 가족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김윤석의 캐릭터에게 당시의 진보는 북의 그들과 똑같다고 느껴졌겠지. 지금도 그런 맥락으로 진보를 비난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이해가 되리라 본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무슨 프레임을 씌우든 보수는 '사유재산의 인정과 자유와 권리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보장하고자 한다.' 이들과 맞서는 진보는 가진자들의 것을 빼앗자는게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형성되는 사유재산의 인정과 책임이 따르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형태로 성장해야된다. 이것을 지키는 자 VS 빼앗는 자로 나누면 1950년대에서 한 발자국도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한번쯤은 생각해봤으면 했던 이야기이기에 이 글에 남겨본다.

 

연희역의김태리모습

 

▲ 묘한 존재감 김태리를 다시 본 작품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마무리를 지어보자. 난 이 작품을 보는 내내 그리 큰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아는 것보다 참혹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계속 눈에 거슬리는 캐릭터는 있었다. 바로 김태리였다. 민주화에는 관심도 없는 순박한 여대생, 삼촌의 부탁에 야권 재야인사와 접촉하는 조카, 삼촌이 끌려간 뒤 비로서 스스로 움직인 소녀, 이한열의 부상 소식에 자의로 시위에 뛰어든 여성 등 많은 모습이 담겨있는 그녀의 캐릭터가 눈에 계속 밟혔다. 어쩌면 문제의식과 사명감에 똘똘 뭉쳐있는 다른 캐릭터들과 다른 일반 소시민의 모습이라는 점이 시선을 계속 끌었던것 같다. 그렇다. 그녀의 캐릭터는 시위의 밖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혹은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던 대다수의 시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혹자들은 그녀의 캐릭터를 보고 영화 초반에 보였던 광장 속 여성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서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김태리의 역할을 '여자'로 해석하지 않았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의 삶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그녀가 버스 위로 올라갔을때 지었던 그 표정은 압권이었다. 그녀의 눈 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졌을지 뻔한 상황이었지만 그 예상만으로도 살짝 전율이 오더라. 영화 레미제라블을 본 분들이라면 이해가 될거다. 시민혁명군이 깃발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던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120분 내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가 마지막 한 순간에 전율에 몸서리쳤다. (내가 영화를 좋다 별로다 평가하는 기준이 바로 전율을 느꼈느냐 여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것에 만족한다. 괜찮았어.

 

※ 역시 영화 1987을 보면 이런 글을 쓰게 되는구나 싶다. 화려한 휴가때도 그렇고 택시운전사때도 그렇고 항상 영화 속 내용보다 이런 이야기를 적다보니 조심스러웠는데 결국 적었다. 미루고 미루다 끝내 안보려고 했던 이유기도하다.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10년 넘게 블로그를 운영한 입장에서 지난 9년은 정말 조심해야했던 시간이었거든. 민감한 문제만 다루면 블로그가 검색에서 사라져버렸었다. 진실이든, 감상이든, 느낌이든 이렇게 길게 써버릇하니 항상 과잉충성을 하는 곳의 견제를 받더라. 그래서 적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영화 리뷰로는 가끔 적는다. 욕도 많이 먹는데 최근에는 읽는 이가 없어서 무반응이 대세라서 작정하고 이번 영화 리뷰에는 마음껏 적어봤다. 정말 상황만 허락한다면 글 중간에 적은 그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점점 나이만 먹어가는구나. 벌써 마흔이 코앞이라니. 하핫.

 

엔딩크레딧에 흘러나온 김태리, 강동원의 '가리워진 길'이 너무 인상깊어서 무한반복 시켜서 들으면서 후기를 적었네요. 당분간 이 노래만 들을것 같습니다. 너무 좋네요. 슬프고 아프고 안타깝고. 노래의 힘은 참 대단해요.

 

가방 끈 짧은 백수입니다. 마구잡이로 쓴 글이라 보는 이의 신경을 거스를수도 있으나 힘도 없고 권력도 없는 소시민이 적은 잡담이니 괘념치말고 지나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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