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해당하는 글 1

2010년 대만여행 이야기

일상|2018. 5. 3. 12:09

서른살때 꿈에 도전하고 싶어서 3년을 다닌 보험회사를 퇴직했다. 그 뒤로 10달 동안 매 주 영화 한 편, 책 한 권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했다. 3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전세값 제외)을 모두 탕진하고 다시 직장 생활을 했지만 난 그 때가 인생에서 세번째로 행복했다. 가장 행복했던건 작년이고, 두번째는 보험회사였다. 당시에는 존재했던 베스트 프렌드가 친구끼리 해외여행을 가자며 대만여행을 제안했다. 놀고 먹던 백수가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여행 준비를 혼자서 다했다. (친구는 바쁜 직장인이자 밖에서 내 대신 말을 해야되는 임무가 있었다.) 나와 친구 외에 2명의 여성이 동행했던건 계획에서 없던 일이지만 덕분에 엄청나게 많이 싸워서 기억에 더 많이 남는다.

 

4박 5일 일정을 짜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일단 한국에 있는 대만 관광청에서 안내 책자와 MRT 충전카드 4장을 사오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여행 기간 동안에 돌아볼 동선을 짰다. 각 스팟별로 먹을 곳, 볼 곳 등을 잡고 머무르는 시간, 이동 시간, 여유 시간까지 다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 중간에 갑작스럽게 지우펀으로 가보자는 말이 나왔을때 많이 당황했던 이유다. 동선에 없었으니까. 이동수단은 오로지 MRT와 버스뿐이었다.

 

※ 쓰다보니 8년전 이야기다.

 

항공 예약 (2010년 기준)

 

아시아나 멤버쉽이 있어서 그쪽으로 알아봤다. 이코노미 4좌석을 아무 자리나 예약한 다음에 사이트를 수시로 확인해서 2명씩 앉도록 자리를 변경했다. 출발, 도착 모두 아시아나를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평일 출발, 휴일 저녁 도착이라서 항공편은 저렴한 편이었다.

 

숙소 예약 (2010년 기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게스트하우스가 있어서 이메일로 문의를 했는데 여행 3달 전이었음에도 이미 방이 다 찬 상태였다. 그래서 타이페이 시내에 있는 3성급 호텔로 알아봤는데 더블 2개가 있어서 방 2개를 잡았다. 모든 문의와 예약은 이메일로 이루어졌으며 영어를 알 필요가 없었다. 번역기는 언제나 유용하니까. 이메일에는 '호텔을 예약하고 싶다.' '체크인 날짜' '체크아웃 날짜' '방 갯수' '침대 크기'만 적으면 된다. 예약이 가능하다면 호텔에서 바우쳐를 이메일로 보내주고 그걸 프린트해서 호텔 카운터로 가져가면 방 열쇠를 준다. 당시에 게스트하우스가 1인 1박당 5만원이었으며 호텔은 55000원이었다.

 

실제로 여행한 곳 (2010년 기준)

 

타이페이 시내 (용산사, 101타워, 중정기념관, 박물관, 스린 야시장)와 MRT로 이동할 수 있는 외곽 도시와 버스로 이동해야했던 지우펀까지였다. 어차피 지우펀과 101타워에서는 2명씩 나눠져서 다녔기에 시간을 많이 썼다. 내 성격상 관광 목적보다는 여행 목적이라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편이거든. 실제로 저 두 곳에서는 해 떨어질 때 카페에서 석양 구경하다가 헤어져서 다음날 아침에 만났다.

 

실제 총 사용경비(2010년 기준)

 

왕복 항공, 숙박비, 식비 포함해서 1인 기준 60정도 썼던것 같다. 그 60%가 숙박비와 항공편 이용요금이었으며 점심, 저녁을 사먹은 비용은 의외로 적었다. 항상 비싼 음식만 먹는게 아니잖아. 아침은 호텔 조식으로 해결하고 점심은 거의 빙수나 가벼운 국수를 먹고, 늦은 오후쯤 전망좋은 카페를 가서 해가 떨어지는걸 구경하며 와플에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외에 딤섬(딘다이펑)을 주로 먹었다. 그래서 식비나 구경하는 비용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나는 101타워 전망대에 입장해서 좀 더 썼을 뿐이지)

 

언어 문제(2010년 기준)

 

일단 대만으로 출발하기 전에 우리가 가야 할 곳의 이름을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써서 다 인쇄를 해놨다. 버스에 타거나 택시를 탈 때 보여줄 생각이었다. 길을 물을때도 유용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영어라고 쓴 단어는 몇 가지가 되지 않는다. (THIS ONE ~ FORE, HOW MUCH~ 끝) 나머지는 모두 바디랭귀지였다.



 

딤섬 이야기

 

와이파이로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딤섬, 즉석에서 먹으러 가자는 말이 나왔다. 마침 이동 경로에 본점이 있어서 가보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딘다이펑이다. 이곳은 워낙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서 한국어 메뉴판이 있었고 기본적인 한국어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갔을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기하는 줄이 길었다. 베스트 프랜드라는 녀석은 기다리는걸 광적으로 싫어해서 그 날은 딤섬 업계 2위인 곳의 본점에서 식사를 했다. 하지만 업계 2위인데 마치 대만 한가운데 떨어진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결국 눈에 보이는대로 막 시키다가 망했지. 그래서 화가나서 딤섬을 2번이나 먹었다.

 

오래전 일이라서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데 예전에 보정했던 것들이 좀 있어서 같이 올려본다. 당시에 올림푸스 E420 으로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가방 들고 다니느라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던 기억이지만 새록새록 떠오르는걸 보면 신기하다.

 

 

▲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곳이다. 타이페이에서 MRT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항구도시였다. 여기서 바다를 보고 싶어서 갔었고 미리 예약된 카페에 올라가는 골목의 한 장면이다. 카페는 이 도시에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유명한 곳이었다. 올라가는 언덕이 가파르지만 초록색으로 뒤덮여서 기분이 좋았었다. 그런데 당일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에피소드가 생겼다.

 

 

▲시내에서 카페로 올라가는 길의 모습 (녹색이 너무 예뻐서 찍었던 기억이 난다.) 

 

난 당시에 카페 테라스 자리 4좌석을 예약했다. 테라스 난간 너머로 푸른 숲과 항구,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마침 강풍과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급하게 테라스에 있던 손님들이 실내로 들어왔다. 기분이 좀 나빠지려고 하는 순간에 웃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 반응이 너무 밝았고 직원들이 익숙하다는 듯이 테이블을 새로 실내에 설치해서 다 앉을 수 있었거든. 거기에 테라스에서 버린 음료와 사이드메뉴는 다시 갖다줬다. 그래서 웃다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 밤에 찾은 대만 용산사의 모습이다. 실제로 이 곳은 시민들이 기원을 드리러 오는 장소여서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다보니 전체적인 모습은 몽환적이었다. 각자 자리를 잡고 향을 들고 연신 기원을 드리는걸 보면서 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들도 향에 불을 붙이고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용산사를 다녀와서 대판 싸웠는데 그 이유는 어떤 여자아이 때문이다. 기원을 드리는 사람들 중에 10대 초반쯤 되는 꼬마아이와 아빠가 같이왔는데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 묘했거든. 그래서 연신 카메라로 그 아이를 찍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을 본게 두번인데 그 아이가 첫번째였다. 예쁘다. 못생겼다.의 기준이 아니라 그냥 묘했다. 끌림이랄까? 용산사 내부에 몽환적인 분위기와 그 아이가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너무 묘하게 어울렸었다. 그래서 그 날 대판 싸웠다. (억울했지만 싸울만은 했다.)

 

지금 그 사진은 없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는 그 장면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희미하지만 내츄럴한 긴 생머리에 린넨 재질의 원피스, 여리여리한 팔뚝, 하얀 피부가 기억난다. (내가 억울했던 이유는 그 아이 얼굴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에 없다.) 살면서 딱 2번의 기묘함을 그때 처음 느꼈다.

 

 

▲ 대만여행 초반에 갔단 중정기념관 외곽길 모습이다. 보정을 잘못했는데 원본은 어디가고 이 사진만 남아있다.

 

사실 대만의 경우 '크다'는 표현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 카페, 녹색이 많이 보이는 전망, 사찰, 사람들 그리고 생기있는 분위기가 기억에 많이 남지만 관광지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엄청나게 크고 넓었을 뿐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그 기념물보다 그 안에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특히 중정기념관의 경우 마치 잘 정리된 공원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부터 아이들 손을 붙잡고 꽃을 구경하는 가족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스린 야시장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던 스린 야시장의 추억은 치즈 스테이크겠지. 좁은 테이블에 오직 스테이크 한 덩이만 나오는 식당이었는데 대만식 포장마차라고 보면 된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다닥다닥 좁은 테이블에 붙어 앉아서 1조각의 스테이크를 허겁지겁 먹었다. 4명이 따로 앉아서 그것만 후다닥 먹고 나오는데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4명이 나와서 과일 주스 하나를 사먹으려고 하는데 이건 뭐 손을 잡고 다녀도 중간에 모르는 사람이 끼어있는 상황일 정도로 복잡했던 스린 야시장의 기억이다.

 

스린 야시장에서 진을 다 빼고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쉬는데 내 눈에 시장 입구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가게 하나가 보였다. 얼핏보면 돈까스를 파는 곳이었고 크기가 왕돈까스만한 치킨 텐더를 파는것 같이 보였다. '저거 먹어보자' 제안했지만 줄 서기 싫어하는 3명의 군상들 덕분에 못 먹을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줄 서서 다 사올게 여기서 좀 쉬어'라고 말하고 30분을 줄 서서 기다린 끝에 그 짝퉁 왕돈까스를 2개 사왔다. 당시에 계산을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른다. TWO, HOW MUCH? 이거 두 마디만 했던것 같다. 사들고 갔을때 베프의 눈빛이 아주 피곤해 죽겠다며 짜증내려고 준비중이었는데 왕돈까스를 입에 물려주자 바로 함박웃음을 짓더라. '너 아니었으면 이거 못 먹을뻔' 이라며 신나게 먹더라. 개인적으로 대만에서 먹었던 망고빙수 다음으로 맛있었던 길거리 음식으로 기억한다. (왕돈까스 크기가 워낙 커서 2명이 하나를 먹어도 배가 부르더라.)

 

지우펀은 나중에 다시 가봐야 할 곳

 

지우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거긴 애초에 휴식과 멜로다. 가파른 언덕을 돌계단을 밟고 올라선 끝에 만나는 찻집, 차 한 잔을 앞에두고 만나는 대만 시골의 석양, 그리고 산책만 생각난다. 사진기는 꺼낼수도 없었다. 사진찍으러 간게 아닌데 거기서 사진기를 들면 나쁜놈 되는거지. 타이페이로 돌아오는 막차를 간신히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을때까지 지우펀 효과는 이어졌다. 아마 4박 5일 중 그 날 저녁에만 안싸웠을걸? (계단 올라가다가 이미 체력은 고갈된 상태라 씻고 자기 바빴다.)

 

대략 내가 기억하는 2010년의 대만여행은 이런 내용이다. 너무 오래된 여행이야기라 일상 카테고리에 적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하게될 여행에 대한 글은 따로 카테고리를 열어서 올릴 예정이다. 준비 과정, 루트, 여행지 사진 등을 올리고 싶은게 내 욕심이거든.

 

※ 2010년에 했던 대만여행의 느낌을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한 때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이 아시아의 4대 용으로 불렸다. 경제 발전이 빨라서 신흥 강국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대만은 1990년대 초반 모습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2010년이었던 한국인의 눈에는 시골에 온 느낌, 어릴때 봤던 도시 모습으로 보였다. 난 당시에 대만여행을 하면서 그들의 선택이 옳았을까? 우리의 선택이 옳았을까?를 생각해봤다.

 

※ 내 눈에 비친 대만의 건물은 우중충했지만 그 곳의 사람들은 밝고 생기가 넘쳤다. 글루미한 감성을 가진 나조차도 에너지를 느낄 정도로 강력했다. 또 공공질서를 지키려는 노력들을 곳곳에서 목격했다. (MRT를 타고 내릴때 생수병을 갖고 다녔는데 관리인에게 몇 번이나 지적을 받았다. 대만은 역 내에서 음식물 섭취가 금지라는 설명을 들었다. 엄격했고 내가 본 시민 중 밀폐된 공간에서 음식물(물 포함)을 먹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어디든 깨끗했고 잘 관리되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당시에 난 대만여행을 하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대만 여행을 또 가고싶다. 타이페이 시내에만 있어도 충분히 재미가 있으니 2박 3일, 1박 2일 일정으로도 괜찮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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