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1997)

취미|2018. 1. 24. 20:17

20대 후반에 이 영화를 접했고 good 을 외치며 평점 10점을 줬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생각날때마다 보며 감동의 쓰나미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서른 일곱, 다시 굿 윌 헌팅을 봤을때 1점짜리 평점이 부러워졌다.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으면 받을수록 좋았을텐데 여전히 만점짜리 평점들이 넘쳐난다. 아쉬운 현실.

 

영화는 시종일관 윌 헌팅(맷 데이먼) 개인의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 대사의 90%는 헛소리로 채워진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숀 (故 로빈 윌리암스)의 대사가 윌의 감정을 폭발시키기 전까지 여자친구인 스카일라와 정신과 의사인 숀 만이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하게 윌에게 다가가며 적은 양의 대사들을 쏟아낸다. 그 순간까지 윌은 단 한번도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네가 진짜 원하는게 뭐야?'라는 숀의 질문에 대한 답은 끝까지 윌의 입을 통해서 나오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에서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한 대의 자동차가 그 답일 뿐이다. 이런 화장실 유머와 의미도 없는 수 많은 헛소리로 채워진 영화에 감동적이라며 10점짜리 평점을 주는건 안타까운 일이다. 대부분은 허세와 가식으로 10점을 줬을테고, 일부는 윌 헌팅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아서 10점을 줬겠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개인적인 고통을 보고 들으며 공감을 한다는건 동일한 아픔을 겪고 있다는 증거. 가식이든, 허세든, 공감이든 어쨌든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이 10점이라는건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다.

 

 

과거는 네 잘못이 아니지만 현재는 네 잘못이야

 

윌이 시종일관 쏟아내는 지루하고 장황한 대사들이 불편한 이유를 숀은 정확하게 짚어낸다. 지식을 뽐내는 행위일 뿐이거나 핑계나, 변명, 무책임한 헛소리만 가득하다는걸 두 번째 만남에서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윌은 스카일라를 찾아 떠나기 전까지 (영화의 99%)시종일관 그 상황과 현실에서 상처받기 싫어서 거짓말과 악다구니, 화장실 유머로 대화를 일관한다. 어릴 적 학대와 입양, 파양의 반복이 그의 잘못이 아니라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사랑한다는 사람의 진심 앞에서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짓말로 도망치기 바쁜 삶은 그의 잘못이다.

단언컨데 '도망치기만 하는 삶'은 어릴때는 '상처받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처받는 일 밖에 없는 인생'으로 치닫는 자신의 모습만 만들어낼 뿐이다. 극 중 윌은 스물, 만약 그가 30대 혹은 40대였다면 이 작품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이야기로 채워지지는 않았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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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스카일라 그리고 소울메이트

 

허세가 가득 섞인 단어 '소울메이트' 지금도 기억에 남는 숀의 대사 중 한 단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의 영어 단어라고 보면 된다. 스카일라는 윌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의 대상이자 그의 마음을 열고, 그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캐릭터다.

 

사실 스카일라는 윌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들을 윌을 향해서 보여준다. 진심을 드러내고, 마음을 전하고, 하고 싶은 말을 가감없이 쏟아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기에 상실감도 느끼지 못하는 감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윌과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며 슬픔, 아픔, 기쁨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가는 스카일라의 만남은 그 자체로 행운이지.

 

아마도 스카일라의 존재가 없었다면 숀을 만났더라도 윌은 마음을 열지 못했을거다. 숀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윌은 도망쳐버렸을거다. 굳이 변화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테니까. 갖고 싶은게 없는데 노력해야 할 이유도 없는거지.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깊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두려워' 하는 윌의 마음을 콕콕 찍어가며 사랑한다고 외치는 그녀의 모습은 아주 깊은 교감을 나눌 준비가 되어있는 소울메이트였다. 윌이 아직 사랑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 아무 일 아닌것처럼 도망쳤을 뿐.

 

엔딩 크래딧의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윌의 모습은 단지 스카일라에게 달려가는 의미가 아니다. 그 동안 책임지기 싫었던, 상처받기 싫어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책임을 질 의지가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인가를 두려워한다는, 그래서 시종일관 거짓말과 가벼운 농담으로 일관하는 윌에게 진심을 다 해서 자신을 보여주려고 애 썼던 스카일라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떠난거다. 실패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고, 서로에게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일단 노력은 해보기 위해서' 무작정 떠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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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 영화를 소개할 때 '천재'라는 단어는 필수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게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이 작품은 사랑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 드라마다. 그에게 그런 행운을 선사하기 위해서 '천재성'을 끼워넣었지만 스카일라와 만나는 윌도, 숀과 마주하는 윌도, 자기 삶에 주체가 되기 위해서 떠나는 윌도 천재가 아닌 그냥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 작품을 최근에 3번 정도 보면서 느낀 점은 '천재',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점. 진짜 명대사는 '네 잘못이 아냐'가 아니라 '네가 원하는게 뭐야?' 그리고 '단지 캘리포니아로 같이 떠나자는 것 뿐이야. 물론 싸울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보려는거야.' 이 두 개가 아닐까 싶다.

 

아마 이 영화 속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천재, 수학, MIT, 학대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기억을 하게 될 거다. 하지만 공감하고 이해를 한 만큼 윌의 방어심리와 스카일라의 존재감이 기억에 남을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윌의 방어심리(상대가 날 버리기 전에 날 떠나게 만드는 심리)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유명한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하도록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거나 스카일라가 진지하게 자신과 캘리포니아로 떠나서 함께하자고 했을때 악다구니를 써가면서 그녀를 몰아붙여 정을 떼려는 장면 등. 심지어 숀을 처음 만났을때도 숀이 그 그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그의 신경을 긁는 행동 등.) 그 심리 자체가 타인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애초에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리고 그걸 깨버린게 스카일라와 숀 두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숀의 분량이 더 많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 같아서 더 크게 그려지지만, 난 스카일라가 모든 일의 동기라고 생각한다.

 

- 그냥 지우려다가 나중에 고쳐서 다시 쓸려고 남겨두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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