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고박사냉면 그리고 부모님

얼마 전에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전 엊그제까지 정신이 가출했던터라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당일에 어머니께서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으셨는데도 몰랐습니다. 가족이지만 30년 가까이 떨어져서 살았기에 사실 그런 살가움이 없지만 어버이날, 생신은 챙겼는데 올 해는 전화 한 통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서운하시다는 말씀을 하셨다네요. 그 말을 전해듣고 얼마나 신경이 쓰였는지 모릅니다.

 

다행히 어제 부모님이 모두 시내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나오셨답니다. 덕분에 얼굴보고 이야기도 좀 하고 식사도 했습니다. 섬에 같이 살고 계시는 이웃이 '서산에 고박사 냉면이 맛있다.'라고 했다길래 두 분을 모시고 다녀왔네요. 저는 몇 번 이용한 적이 있지만 부모님과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픽업은 안하고 부모님이 집에 오실때까지 일을 다 했습니다. 아버지가 들어오셨을때 일부러 더 많은 말을 했네요. 걱정했던것과는 다르게 기분은 좋아보이셨습니다.

 

초보운전이지만 차를 끌고 고박사 냉면으로 가서 식사를 했는데 숯불고기와 물냉면을 드신 부모님이 만족하셨어요. 서산에 한정식집은 다 한번씩 이용했는데 의외로 자잘한 곳에서 만족을 많이 하십니다. 저야 원래 여름이면 냉면을 달고 사는 체질입니다. (인스턴트만 제외하고 냉면은 다 좋아합니다. 대학생일때는 학교 앞 식당에서 여름 내내 냉면만 먹을 정도로 좋아하거든요.)

 

사람이 평생 하는 걱정 중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3% 라고 했던가요? 괜히 밤새 신경을 썼네요. (알면서도 매번 이러니 소심한 성격을 탓해봅니다.)

 

어쨌든 점심시간 지나서 서산 고박사냉면으로 향했습니다. 위치는 알고 있었으나 차로 간 적이 없어서 여고를 지나서 한바퀴를 뺑 돌아서 도착했네요. 뭐 익숙한 일입니다. 워낙 운전을 못해서요. (부모님을 섬에 데려다 드리거나 서울에 갈 때 외에는 거의 할 일이 없어요.)

 

 

▲ 도착해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먹은 물냉면입니다. 냉면 주문시 숯불고기가 나옵니다. 빈 말이 아니었던지 아버지가 냉면을 국물까지 싹 비우셨더군요. 그 간의 걱정을 싹 잊게 해주는 반응이었습니다. 일단 냉면은 양이 푸짐했고 따로 곁들이는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고기와 궁합이 좋은건 다들 아실테고요. (제가 보쌈을 먹는 이유가 막국수에 고기를 비벼먹기 위함이라지요?)

 

 

▲ 함께 나오는 숯불고기입니다. 꽤 큰 조각들이 구워져서 나오니 먹기 좋게 잘라줘야 합니다. 언제나처럼 전 여전히 손을 떨며 고기를 잘랐고 그 모습이 익숙해지신 부모님은 더 이상 제 손에서 가위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손을 떠는거지 못 자르는게 아니라고요. 라고 화를 낸 적이 있거든요.)



 

※ 제가 사람들 앞에서 손 떠는걸 알게된게 대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오리엔테이션때 학과장 면담에서였습니다. 차를 줬는데 잔을 든 제 손이 떨리더군요.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에 수석과 차석의 수능점수가 그 학교에 갈 점수가 아니라서 호기심에 불렀답니다. 수석이었던 아줌마는 정시를 너무 높게 잡아서 다 떨어져서 편입하려고 그 학교에 지원했고 저는 대인공포증이 있을때라서 정시를 볼 엄두가 안나서 4년 장학금을 노리고 특차로 지원했지요. 물론 그 수석 아줌마 덕분에 2년 장학금으로 반토막이 났지만요. (군대를 다녀온 뒤에 복학하니 고학번은 학점이 좋아도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는 통보를 듣고 B+만 유지했던 기억이 나네요. B플 유지? 간단합니다. 학기 초반에 1달 동안 수업을 다 빠지면 됩니다. 그럼 출석부족으로 B+을 받습니다.) 갑자기 손 떠는 이야기를 적으니 그 때 생각이 나서 적어봤네요. 아무런 추억도 없는 대학생활 4년의 몇 개 안되는 기억 중 하나네요.

 

※ 대인공포증 극복 방법이요? 간단해요. 군대가세요. 사람을 때려도 보고 사람에게 맞아도 보고 부당한 일도 해보고 사람도 다뤄보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아? 지금 군대는 바뀌었나요? 그럼 엄청 피곤하겠네요. (미친듯이 입으로 갈구는 선임보다 그냥 할 말 하고 한 대 때리는 선임이 훨씬 나은데.....) 가끔 정신적으로 극단적인 아이들이 있어서 괴롭힘의 정도가 심할수는 있지만 남자에게 그런 조직문화를 한번 겪어보는것도 큰 경험이거든요.

 

어쨌든 맛있게 냉면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배를 타는 부둣가로 향했답니다. 그래도 몇 십번을 왔다갔다 한 길이라서 그런가 이제 좀 편하게 운전을 하는 코스입니다. 서산 시내에서 벌천포 부둣가로 가는 길이죠. 평일 낮에는 차도 별로 없어서 초보운전에게는 더 편한곳이죠.

 

부둣가에 갈 때까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차를 바꿔주겠다며 얼마냐고 묻기도 하셨고, 외삼촌 이야기도 하시고, 동생 내외와 조카들 이야기도 나오고 친척들 소식까지 들을 수 있는게 차 안입니다. 제가 대답해야 할 부분은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가급적 어른들 일에는 의견을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머니가 속풀이를 하실때는 같이 맞장구를 치는 정도가 전부죠. (차를 바꿔준다는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수익이 나오기 시작하고 자리를 잡아가면 그 때 알아서 바꾸겠다고 했네요. 백수가 차 바꿔서 뭐해요.)

 

어쨌든 평범한 평일 하루를 부모님과 같이 보내면서 기분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버지 마음이 걱정이었는데 잘 마무리가 됐습니다. 덕분에 늘어나던 몸무게가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네요. (저는 몸이 힘들면 살이 빠지고, 마음이 힘들면 살이 급격하게 찌거든요.) 내일부터는 다시 잠시 멈췄던 아침운동을 해야겠습니다.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봉순이가 생각나기는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망상이니까 애써 꾹꾹 눌러담아야되는 문제네요.)

 

다음에 부모님이 오시면 어디를 모시고 갈까 알아봐야겠네요. 어제 하루는 오전에 글 2개 올리고 부모님과 함께 보내며 마음을 좀 녹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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