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들

취미|2018. 5. 16. 10:52

내가 온라인게임을 시작한게 23살때부터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열심히 게임을 했었다. 덕분에 게임잡지사와 인연을 맺기도 했고 일로서 게임을 접하기도 했었다. 알게 모르게 다양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그런데 방금 블소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헤딩파티에서 만난 아저씨 이야기를 보니 예전에 게임을 할 때 추억이 생각났다. 리니지2, 나이트온라인 두 개의 게임을 오랫동안 깊게 플레이했기에 한번 내 블로그에 그 추억을 꺼내본다.

 

* 블소 자유게시판의 경우 거의 20대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다. 가벼운 분위기라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편이다. 특히 20대 특유의 톡톡튀는 병맛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가끔 과도한 징징글이나 저격글, 팝콘글 등은 눈살을 찌푸린다. (쟤 나빠요. 라는 글인데 내용을 보면 글을 올린 이가 더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자게이들은 그 글에 동조를 하지만 내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고 할까?) 그런것을 빼면 참 재미있는 블소 자유게시판이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그림을 왜 저렇게 잘 그리냐? 만화가인줄?

 

그럼 온라인게임과 얽힌 추억팔이를 시작한다.



 

리니지2

 

우연한 기회에 잡지사 수습으로 들어가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원래 맡고 있던 공략파트가 바뀌면서 리니지2 공략을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가 주요 에피소드다. 리니지2와 얽힌 이야기를 몇 가지 정리해서 남겨본다.

 

앵벌이 기획기사

 

'효과적인 앵벌이 방법 소개'를 공략 기사로 내놨을때 겪었던 일이다. 그 당시에 필드에서 상점 판매가가 높은 재료 아이템을 드랍하는 몬스터가 있었고 그 곳에서 앵벌이 24시간 이어지는 상황에 이 기사를 세상에 내놨다. 나 또한 시간당 100만 이상의 수익을 올릴때였지. 기사가 나가자 아는 사람만 알던 그 필드에 어중이 떠중이가 다 모여들었다. 그러자 내게 귓속말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협박이었다. 입에 담지못할 협박이 난무했다. 사실 그 사냥터 외에도 몇 곳이 더 있었는데 일부러 그 곳 하나만 적었는데도 볼멘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척살을 내리고 앵벌이 캐릭들을 잡고 다녔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부계정 캐릭터로 일방적인 학살을 했다. 본 캐릭터는 게임 상에서는 공인이라서 욕도 못 했다.)

 

중립혈의 고충

 

잡지사에서 공식적으로 게임 내에서 활동하는 혈맹의 군주로 플레이를 했다. 혈원의 숫자는 대략 140명 정도였는데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변두리에 작은 성 하나는 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지만 게임 내에서는 공인의 위치였기에 중립을 고수했다. 물론 당시 리니지2의 공성혈은 한 곳당 총 혈원이 500 ~ 1000명 정도였기에 기란 같은 성은 먹을 수 없었다. (성혈끼리 용계에서 붙으면 서버가 다운되는 일은 흔했다.) 기자혈로 알려졌고 내 기사가 잡지에 나가는 상황이라 분쟁 조정을 참 많이했다. 성혈간에 작은 다툼부터 일반 유저간의 다툼같은 일이 벌어지면 꼭 내게 귓말을해서 중재를 요청하는 일이 많았다. 내게 게임에 없으면 게임 내에서 읽고 쓸 수 있는 게시판에 나를 수소문하는 일도 있었다. (실제로 시험기간이었는데 혈원에게 전화가와서 부랴부랴 pc방에서 접속한 적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걸 풀 방법이 필요했는데 본 캐릭터로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방 스킬이 있는 법사를 다른 계정에 키웠다. 그리고 화가 날 때면 필드를 돌아다니며 학살을 하고 다녔다. 당시에 그 캐릭터가 누구냐는 말이 참 많았는데 끝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부계정 명의도 게임을 아예 안하는 동생의 것으로 했었거든)

 

* 지금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이해시키고 설득하면 분란이 해결되는 경우가 99%였다. 분란의 당사자 2명을 파티에 초대하고 1명씩 자기 이야기를 한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 서로 다른 두 명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채팅창을 스크롤로 올려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거의 이 단계에서 서로 화해하고 풀어진다. 만약 여기까지 왔는데도 둘이 의견이 대립하면 두 사람이 속한 혈맹의 군주나 그 대리인을 파티에 초대한다.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해서 합의를 도출한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여기서도 해결이 안되면 혈전이다. 필드쟁을 뛰는거지. 대화 전에 여기서 합의 안되면 두 혈맹이 필드쟁을 하는걸로 알겠다고 말해둔다. (이 말은 내가 성혈에 말해서 두 혈맹에 대한 필드쟁 소식을 전하겠다는 말이다. 두 혈 모두 소규모의 혈맹이라면 성혈에 척살당하던지, 자기들끼리 서버 게시판에 공고하고 혈전을 벌이던지 해야된다.)

 

부부 혈원의 부부싸움

 

오프라인 잡지사에서 기사를 보고 가입한 혈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덕분에 혈원들의 직업이 다양했다. 홍콩에서 일하는 애널리스트 (전문 급처상인), 육군 장교 (날먹 힐러), 육군 부사관 (지갑전사), 기자, 대학생, 고등학생, 꽃뱀, 꽃뱀 동생, 술집 사장님, pc방 사장님, 고깃집 사장님 등 다양했다. 그 중 잡지사 기자 2분은 부부였다. 당시에는 지옥같은 마감을 치면 1시간 내 출근 가능한 상태로 3일간의 휴가를 줬다. 그 때가 그 부부가 유일하게 같이 게임을 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1달에 한번씩 꼭 그 순간에 채팅으로 부부싸움을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되는 분은 (차마 닉네임은 못 적겠다.) 틈틈히 게임을 즐기며 각 종 재료아이템과 주문서 등을 창고에 쌓아놓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남편되는 분은 꼭 술 한잔 걸치고 게임에 접속해서 아내의 창고를 싹 털어서 무기와 방어구 강화질을 한다. 그러다 꼭 두 분이 같이 게임을 할 때 폭발해서 지루한 말싸움을 이어간다.

 

난 그저 장난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두 분의 신혼집에서 2일 동안 머물렀을때 그게 실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게임 때문에 부부싸움하면 창피하다며 두 분이 나란히 컴퓨터에 앉아서 채팅으로 싸우는데 정말 살벌했다. 아니 축젤 몇 장 쓴게 부부싸움할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난 객식구의 입장이라서 꾹 참았던 기억이 난다.

 

오프라인 모임

 

사실 리니지2의 경우 게임 내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보다 밖에서 일어난 에피소드가 훨씬 많다. 한 달에 2번씩 마음 맞고 시간 맞는 혈원끼리 모임을 가졌는데 대략 10명 정도가 모였다. 대학생, 고등학생, 기자가 주축이었다. 나중에 다 졸업하고 취직해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모습까지 봤지만 참 그 모임이 재미있었다.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게 어떻게 처음 본 사람들끼리 게임 이야기로 5시간 동안 카페에서 죽 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이 오프라인 모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들의 인생을 알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던 미성년자 3명은 각각 좋은 대학교에 진학했다가 패션쪽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K대학생이던 녀석은 L사에 들어갔고, 나와 같은 학교였던 형님은 심리학쪽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현재 연구소에서 살고 계신다.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일을 했던 애널리스트 형님은 아예 홍콩에서 뿌리를 내리셨고 평생 혼자 사는게 유일한 목표라던 부사관 친구는 가장 먼저 청첩장을 보냈다. (연애를 하니 신세계였다고 말하더라.)

고딩 놀려먹기

 

우리 혈맹에 고3 여학생이 2명 있었다. 두 명 모두 서울의 유명한 여대를 진학했다. 그 중 한 명이 특별하게 예뻤는데 좀 장난기가 많았다. 그들이 대학을 가기 전에 모임에서 만나면 내가 보호자 역할을 했기에 나름 친했다. (물론 술을 준 적은 전혀 없다. 워낙 내가 꽉 막힌 성격이라서 콜라나 사이다를 줬다. 보쌈과 막국수에 사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합인가?) 그런데 그 여학생이 대학 입학이 확정되자 나한테 장난을 치더라. '형이 울 학교 근처에서 학교 다녔으면 내가 사겨주는건데 아쉽다.' 라며 지잡대인 내 학벌을 깔아뭉갰지. 근데 마침 난 몇 일 전에 지도교수님이 대학원 추천서를 써줬거든.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마침 그 아이가 떡밥을 날려서 덮석 물어버리는 척을 했다. 혈 카페에 추천서를 찍어서 올리고 채팅창에 '그럼 오늘부터 1일?' 이라고 장난을 쳤다. 추천받은 대학원이 그 아이가 입학할 학교와 지척이었거든. 그런데 무서웠는지 그 뒤로 2주 동안 접속을 안 하더라. 누가 진짜 사귀자고 한것도 아니고 장난 친거에 대해서 받아준건데 그걸 진지하게 받더라. 참 당시에 나랑 같이 게임하던 혈원 3명하고 한참 배꼽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현모도 안나오더라. 물론 그 뒤에 다시 아무일 없다는듯이 활동했지만 두번 다시 그 일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나이트온라인

 

개인적으로 유저로서 아주 재미있게 즐겼던 전쟁게임이다. 한국 시장의 특성상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항상 소규모로 게임을 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서버당 대략 150명 정도의 인원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워낙 좁은 바닥이라서 섬뜩한 에피소드가 많으나 즐거운 이야기만 적어봐야지.

 

아버지와 아들

 

게로니크 서버 초창기에 내가 클랜장을 맡고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클랜에는 신컨 암록과 발컨 전사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는데 둘 모두 접속을 할 때는 아들이 암록을, 아버지가 전사를 운영했다. 아들이 학교를 가면 아버지가 암록을 운영했다. 두 사람의 컨트롤 차이가 매우 심했던지라 전쟁존에서도 다 알 정도였다.

 

원래 아들이 운영하는 암록은 전쟁존에 아이디가 뜨는 순간 적들이 다 도망을 갈 정도로 유명했다. 장비가 나쁜데 돈으로 도배한 고렙들을 다 잡고 다니니까 할 맛이 안나서 나가는 경우다. 당시 나이트온라인의 쟁 운영상 암록은 독고다이 스타일로 플레이가 된다. 혼자 필드를 돌아다니다가 포인트로 이동하는 적 법사를 잡거나 전장의 후방에서 대기중인 힐러를 잡는 방식이다. 혹은 솔플을 뛰는 유저들을 잡고 다닌다. 

 

하루는 낮 시간이라 아버지가 아들의 암록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10분쯤 지나니 적국에 소문이 났는지 도망갔던 유저들이 다 쟁존으로 몰려왔다. 이 게임의 컨트롤은 한번 붙어보면 다 표가 나기때문에 '아빠록' 인걸 다 알게 된거지. 그래서 해볼만하다며 다 쟁존으로 들어온거다. 그때부터 아빠록의 수난이 시작된다. 적들이 그 동안 아들에게 당한걸 갚으려는지 아빠록만 계속 괴롭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얼마나 안쓰럽던지 정말 기분이 나빴다.

 

그러다가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바톤 터치를 했다. 그때부터 상황은 역전되어버렸지. 아빠록인줄 알고 주구장창 비비던 적국 유저들이 연달에 발리는 상황이 발생하니까 아빠록에게 진 줄 알고 미친듯이 적국 유저들이 쟁존으로 들어왔다. (나이트온라인은 국왕령이 있어서 자국 유저에게 전체 메시지를 날릴 수 있다.) 보통 200 명 정도가 모여서 싸우던 전장에 수 백명이 몰려버렸고 아들록은 한 시간에 2만의 기여도를 내 힐러에게 선물해줬다. (아 개꿀) 이 때 진했던 3시간의 전투로 단번에 랭커로 그 파티 인원이 다 올라가버렸지.

 

나중에 미친듯이 털리던 적국 국왕이 전체 보이콧을 날려서 일단 종료됐지만 정말 기여도 꿀 빨았던 기억이다. 사실 우리 클랜 쟁파티에서 실력 좋은 아들록, 센스 좋은 지인법 빼고는 다 평범한 유저였는데 당시에 일반 유저 한달치 기여도를 뽑아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전사는 그래도 연타는 제법 치셔서 평타는 한다.)

 

주둥이를 놀린 값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24시간 쟁존이 정말 24시간 돌아갔다. 최소 1:1 파티 대결은 새벽에도 있었다. 나 또한 밤을 새워가면서 쟁을 뛰면서 적 베이스 앞에서 농성을 한 적도 많았다. 쟁 게임이다보니 쟁존에서 분란이 많이 생기지만 적국과 대화가 불가능하기때문에 적과의 감정 싸움은 거의 없다. 다만 자국 사람들끼리 싸움이 많이 일어난다. 그런데 입은 함부로 놀리는게 아니라는걸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같은 클랜 형님은 아니었고 쟁 뛰다가 알게된 분인데 (동접 500명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같은 편 모르는 경우는 없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된 20대 유저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다. 그 형님은 몇 번 그냥 넘겼으나 나중에는 20대 유저가 선을 넘어버렸다. 한 동안 침묵하는 그 형님의 앞에서 알짱대며 계속 주둥이를 털던 20대.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거침이 없었다. 10분쯤 지났을까? 그 형님의 채팅으로 정보들이 술술 흘러 나왔다.

 

이름, 주소, 직업, 나이, 현재 있는 게임방 위치, 가족관계, 가족들의 직장과 학교 이름 등이 그 형님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온거다. 그러자 그 20대 청년은 바로 사죄를 했다. 아마 현실이었다면 바로 머리를 박고 피를 흘리며 사죄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게임이라도 적당히 해라' 이러고 그 형님은 자기 할 일을 하려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너무 궁금해서 그 형님한테 어떻게 알아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형님이 말하길 '10년동안 한 게임인데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겠냐? 적국, 자국 지인들한테 그 녀석 아이디 불러주고 수소문했지. 5분도 안되서 자기들이 아는 정보 다 뱉더라. 심지어 그 녀석하고 같은 게임방 다니는 놈이 가족관계까지 말해주더라. 그래서 그거 불러준거 뿐이야.' 하긴 동접 500명이고 그 중 자국 유저 250명이고 게임 특성상 클랜 가입을 안하고 컨텐츠를 즐길 수 없는데 수소문하면 다 알 수 있겠더라.

 

그런데 그 형님이 조폭이었는데 몇 년 동안 같이 게임하면서 험한 소리를 하는걸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정상적인 삶, 평범한 모습을 한 유저들이 더 악랄하고 비정상적이었지. 가만히 있는 유저라고 막 대하지마라. 정말 한 순간에 모든걸 잃을수도 있다. 게임이 취미라고 막 하다가 그 취미 때문에 불구가 될 수 있다는걸 명심하자. (범인 잡아서 법대로 처분하면 뭐할건데? 이미 자기 몸은 복구가 안되는걸?) 게임 안에서는 모든 기준을 버리고 그냥 상호 존중하고 존대하면서 지내는게 제일 좋다는걸 명심하자.

 

생각해보면 전에 내 광고주였던 대출업자도 깡패였는데 항상 클래식 정장을 입고 된소리 한번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힘 없는 사람들이 강해보이려고 그렇게 욕을 해대고 위협을 하는거지.

 

마무리

 

뭐 이 외에도 온라인게임을 하면서 에피소드는 상당히 많다. 특히 리니지2의 경우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는데 다 적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기억 속에 묻는다. 다만, 난 어느 게임을 하던지 게임 그 자체보다 관계에서 오는 재미로 온라인게임을 했던것 같다. 마이크와 톡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와 멀어졌지만 게임의 즐거움은 게임성 자체보다도 그 안에서 맺어지는 수 많은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이 진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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