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목드라마 슈츠 마지막회를 보고 남기는 소회글

취미|2018. 6. 15. 19:06

첫 회가 방영될때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 슈츠가 벌써 종영을 했습니다. 첫 회부터 꼭 봐야겠다 생각했지만 평소 TV를 잘 안봐서 13회부터 챙겨보게 됐네요. 사실 이 드라마는 시즌9을 앞두고 있는 미국 USA 네트워크에 간판 작품인 슈츠(SUITS)를 리메이크 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소재만 갖다가 한국식 상황으로 바꾼거죠. 제가 느끼는 아쉬움은 그런 것입니다. '왜 우리가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가?' 겁이 잔뜩 먹은 창작인들은 흥행성을 보증 받아야만 움직이는 현실이 아쉬웠죠.

 

이 드라마는 능력은 있으나 자격이 없는 젊은 청춘 고연우(박형식 분)가 일류 로펌 간판 변호사인 최강석(장동건 분)에게 기회를 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성장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어제 마지막회를 통해서 시니어(senior)인 최강석이 자격미달 어쏘(Associate)로 고연우를 선택한 이유가 나옵니다. 전 그 부분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아마 이 장면에서 나온 대사일겁니다.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은 반항적이고 이기심 강한 반골 기질의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일에 순종적이고 무던한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에 순종해서 자신의 눈과 귀는 물론이고 생각까지 제단 당한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썩고 병들어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이미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에 있는 시니어(senior) 최강석이 그런 위기감을 느끼고 고의로 고등학교 중퇴에 변호사 자격이 없는 고연우를 어쏘(Associate) 변호사로 고용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벌어진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국내 최고의 로펌인 강&함의 수 많은 시니어(senior) 변호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강해졌습니다. 또 삶의 방향성을 못 잡고 불공정한 기회만 탓하며 재능을 낭비했던 한 명의 청춘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망친것은 '기회'가 아니라 '선택' 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지요.

 

이 드라마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더 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가 흥행성이 있는지 몰라서 도전조차 하지 못한채 이미 시즌을 8번이나 갈아치운 외국의 흥행 성적표를 출력해서 자신감을 얻었죠. 그 결과물이 KBS 수목드라마 슈츠입니다. 돈은 벌었겠죠. 그런데 작가, 감독, 제작사의 시니어(senior)들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남이 무엇인가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인생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드라마 속이 아닌 현실의 모습입니다.



 

사실 KBS 수목드라마 슈츠는 엄청나게 낮은 확률을 가진 수 많은 우연이 모여서 만들어진 픽션입니다.

가장 먼저 천재적인 암기력에 심성이 바른 젊은이를가 흔하지 않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성공한다는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는 세상입니다. 집이 가난하거나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모습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제압하는 방법을 배우는 아이들이죠.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아이보다 돈 많은 부모를 가진 아이가 더 잘 사는 나라입니다. 즉, 최상급 엘리트와 최하급 학생의 능력 차이가 손톱 밑에 때만큼 밖에 되지 않죠. 궁금하면 군대에 데려가서 동시에 굴려봐요. 그럼 답 나옵니다. 서울대던 조폭이던 거기서 거기입니다.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고,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보다 죄를 짓는 사람이 더 능력있고 당당하다고 평가받는 나라. 그게 현실입니다. (기업에서 시니어(senior) 위치인 분들은 학벌이나 스펙은 업무 능력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겁니다. 다 고만고만하니 구별할 기준이 필요해서 스펙을 갖다놓고 뽑고 앉아있는거죠. 그래서 점점 경쟁력은 떨어지죠.)

 

젊은이만 기적같은 캐릭터였을까요? 아니죠. 강&함의 에이스이자 시니어(senior) 변호사였던 최강석의 캐릭터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습니다. 회사의 흥망성쇄를 결정할 정도의 능력을 가졌으면서 그 정도의 바른 가치관을 가진 시니어를 만나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100만명 당 1명이나 있으면 다행이겠네요. 2인자로서 회사의 문제점과 위기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관리자는 많습니다만 그 해결책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찾을 수 있는 시니어는 별로 없습니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은 가진게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이 되니까요.

 

그 외에 사랑이니, 연애니, 갈등이니, 음모니 하는 것들은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평범한 국민들이 마주하는 소소한 일상이죠. 사랑이 진실할 필요도 없고, 연애가 굳이 애틋할 필요도 없고, 음모나 함정이 굳이 엄청 치밀할 필요도 없는겁니다. 그냥 그런거죠. 사실, 최강석과 고연우 두 명의 캐릭터를 제외하면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것 같습니다.

 

전 원래 13회를 본 뒤에 1편부터 전부 다 받아서 정주행을 해볼까?라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시즌제 드라마, 그것도 이미 오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을 리메이크 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생각은 접었습니다. 장동건, 박형식 두 배우가 아니었다면 그저그런 복사물일 뿐이었을테니까요.

 

※ 박형식이라는 배우가 참 묘합니다. KBS 주말드라마에서 살짝 눈에 들더니, JTBC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확 눈도장을 찍고 KBS 슈츠에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미남도 아니고, 연기력이 뛰어난 중견 배우도 아닌데 그의 배역들이 너무 잘 맞았던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작품을 고르는 눈은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 제가 어릴때 봤던 청춘 장동건은 그냥 예쁘장한 꽃미남 배우였습니다. 얼굴로 인기를 먹는 그런 연예인이었죠. 그런데 마흔 언저리쯤 됐을때부터 눈에 띄는 배우가 됐습니다. 순박하고 착한 캐릭터와는 잘 맞지 않지만 차가운척 하는 어른 아이 역할로는 안성맞춤인 배우죠. 어떤 작품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가 늙기 시작했을때부터 기억에 남기 시작한 배우가 됐습니다. 지금은 장동건이 나온다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그냥 봐야되는 작품이 됐죠.

 

-

 

드라마 슈츠 속 장동건의 캐릭터에 대해서 할 말이 참 많았습니다. 어른 아이라고 할까요? 곧고 올바른 심성을 가졌으나 그것을 적당한 선에서 표현할 줄 모르는 아이같은 어른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일과 관련된 이야기, 사무적인 관계, 당사자와 당사자의 관계에서는 능력과 카리스마를 뽐내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는 서투른 아이같은 어른이었죠. 제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한 명 있고, 저 또한 그런 부류입니다만 그래서 이 드라마에 더 눈길이 갔던것 같습니다. 귀엽잖아요. 이런 이들에게 치료제는 사람이거든요. 적이든 아군이든, 동료든, 연인이든 결국 사람이지요. 아마 박형식의 캐릭터가 그에게는 열쇠이자 치료제였을겁니다.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재미가 꽤 좋았어요. (BUT 부럽지는 않았습니다.) _ 역시 제가 쓰는 모든 글에 결론은 사람이네요. 음?

 

-

 

이 드라마의 결말을 보면서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말은 박형식이 재판장에게 남기는 최후 진술입니다. '할머니께서 사람은 계속 고치며 살아가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얽히고 꼬이면 다시 풀고 새로 시작하면서 사는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선처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를 망친것은 기회가 아니라 선택이기 때문이고, 지금 이 자리에서 정당한 죄 값을 받는것이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라는 식의 대사였습니다.

 

어쩌면 저도 지금 그런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서 수 많은 순간을 낭비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손에 쥔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1년 뒤, 2년 뒤에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 이런 상황을 선택했습니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도 지금 이 순간과 상황들이 제가 스스로 꼬아버린 인생의 엉킴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기회를 어떤 선택으로 채워나갈지는 오로지 제 몫일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내내 즐겁게 보다가 마지막회에서 갑자기 생각들이 엉켜버리네요. 역시 이 맛에 드라마를 보는거죠.)

 

마지막회가 너무 인상적이라서 주절주절 잡담을 남겨봤네요. 장동건, 박형식 모두 믿고 보는 배우가 된것 같아서 좋네요. 매번 남들이 좋아하는 배우들만 찾아봤는데 저한테도 티켓파워를 쥔 배우가 두 명이 생겼어요. (기존에 문채원, 최민식이라는 믿보배 2명이 있었지만 추가로 2명 더 생겼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