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품어야 할 고민이 너무 많다.
오늘 부모님이 시내에 나오셨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장을 보기 위해서 나오셨는데요. 엊그제 담근 김치와 제가 좋아하는 카레, 주전부리로 산 닭강정까지 차에 실어주셨습니다. 대신 저는 서산 - 벌천포 왕복을 했죠. 기름과 그늘막을 사오신 아버지 짐도 배에 다 실어드렸네요. 기름을 사기 위해서 용달차 기사를 불러서 대산으로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와 잠깐 지인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 세대는 이해하지 못하는게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직업의 안정성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적게 됐습니다.
제 지인은 다음달이면 세 아이의 아빠가 됩니다. 20대 때는 공장에서 2교대로 일을하며 돈을 벌었고 집 대신 차를 선택했습니다. 결혼식때 양 쪽의 부모님이 모든 비용을 부담했을정도로 남녀가 참 철이 없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됐을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의 도움으로 그 공장에서 관리직으로 일을 했습니다. 세후 250 ~ 270 정도를 받았죠. 하지만 도움을 줬던 사람이 자기 사업을 한다며 지인을 데려갔습니다. 좋은 아이템, 성실한 직원을 두고 힘차게 시작했기에 저도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사람 일이라는게 쉽지 않죠. 자본을 모두 부담한 사람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을 분할 상환하는 과정을 견딜 수 없는 멘탈이었죠. 덕분에 1년 가까이 무직 상태로 지내는 그 녀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도 생각해서 지금 집 안 어른이 추천한 일을 하기를 바랬습니다. 저도 그러기를 바라지만 머뭇거리는 지인을 이해합니다. 집 안 어른의 도움으로 시작하는 일이었기에 초보임에도 200만원을 받지만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만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방세와 자신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빠듯이 아껴서 집에 보내줘도 100만원 남짓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않고 일만 하면서 살면 150만원이겠죠. 2~3년을 그렇게 한 뒤에 자기 사업장을 낸다고해도 어려운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지요. 주말도 없고, 야근도 밥 먹듯이 하는 그 일을 삼십대 후반에 다시 시작하는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금 그 지인은 용기를 내는 중이지요.
하지만 어머니 세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지금의 젊은 세대만큼 풍족하게 살지 못했으니까요. 일어나서 밥 먹고, 일을 하고, 해가 떨어지면 집에 들어와서 씻고 잠을 자는게 그 세대입니다. 그렇게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그 자식들은 먹고 사는 일보다 자신의 인생이 더 중요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tv, 차, 집으로 대변되는 기성 세대의 지출구조와는 전혀 다른 삶이죠.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고, 몇 달 혹은 몇 년을 모아서 여행을 갑니다. 술과 여자보다는 온라인 게임을 즐기며 한 달에 수 십에서 수 백만원의 돈을 씁니다. 핸드폰만 붙들고도 하루 종일 웃고 떠들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있죠. 그들에게 부모님 세대와 같은 삶을 강요하는건 폭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제 어머니는 그 지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마 우리 사회도 딱 부모님 세대의 생각을 하고 있겠죠. 모든 문제를 개개인의 역량과 선택에 맡기고 사회 구조를 바꿀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해야됩니다.
제 지인의 문제는 단순한 개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인이 고민을 하는 이유를 사회 문제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삼십대 중반에 새로운 일을 선택하더라도 평생 그 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단순 노무직으로 삼십대 후반에 동일 직종에 재취업을 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20대 초반의 직원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야만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애초에 공부 열심히하고 사회생활을 잘 했다면 될 일이잖아. 그 사람 잘못이네'라고 말합니다. 일반 국민 혹은 개인 자격으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정부는, 관련 부처는 이렇게 대응하면 안됩니다. 한 번의 실수로 죽음을 선택해야되는 사회가 되는 일은 피해야되니까요. 그게 정부와 공공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그리고 그 해결책이 자영업이 되면 안됩니다. 이미 수 십년동안 똑같은 이유로 방치된 결과가 지금 자영업자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은 문제로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하나의 사회에서 일정 연령대 이상의 국민이 자영업으로 내몰린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태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력자가 비 경력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게 타당한 기업들을 많이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20살 짜리와 40살 짜리가 같은 일을 하면서 동일한 생산성을 가지는 직장의 수는 점점 줄여야됩니다. 이런 직장이 너무 많아서 30대 중반만되면 10년 넘게 했던 일을 다른 회사에서 할 수가 없습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받아가기 때문에 기업에서 채용하지 않거든요. 경험과 연륜이 무시되는 단순 작업이 필요한 일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을 통해서 유지되는 기업을 많이 만들어야됩니다. 이런 구조가 된다면 무턱대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줄어들테고 기존에 자영업자들에게는 돈을 쓸 수 있는 소비자가 더 많아집니다.
사실 이 문제는 교육 구조부터 경제 구조까지 다 바꾸어야되는 큰 일입니다. 정부가 주도하더라도 최소한 2~30년은 전력 투구를 할 생각으로 진행해야만 하는 일이죠. 하지만 아직은 내 편과 네 편을 갈라서 싸우면서 서로 이득을 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회가 품어야 할 고민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너와 내가 싸워도 둘 다 돈을 벌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죠. 영원할거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대한민국이 왕조국가에서 식민지 시대를 거쳐서 민주 국가로 활동한게 얼만큼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후하게 쳐서 광복 이후부터라고 계산해도 80년도 안됐습니다. 이제 고작 2세대가 지나가는 중입니다. 그 2세대는 편나누기 싸움으로 이득을 봤죠. 하지만 앞으로의 2세대는 어떨까요? 이 사회가 정말 정상적인 국가를 지향한다면 이제 많은 고민들을 품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2세대도 지나지 않아서 박통의 권위주의적 보수가 박살난 이유가 과연 더민주의 힘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국민들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1940년대, 1970년대 국민들과 지금의 국민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박통의 정권이 박살난 것입니다. 앞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구성원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예전과 다르게 물리적인 힘이 실리겠죠. 그러니 이제 사회도 권위주의적 관행에서 벗어나서 일을 해야 될 때입니다. 국민들이 일어나서 그들에게 물리적 책임을 묻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지인의 이야기를 다룬것이 억지스러울 수 있습니다. 지인 문제는 그저 단편적인 문제일 뿐이지요. 하지만 대다수 근로자가 느끼는 위기감 또한 제 지인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절반 이상의 월급 200만원 이하 근로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위기감은 인구 중 대부분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억지스럽지만 굳이 지우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제 사회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지금 만들어진 법과 제도만 100% 집행된다면 많은 부분이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 점수만으로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채 하루하루 과중한 업무에 치여서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이런 글을 적으면 월급을 더 받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런 말은 개인의 문제에서 할 수 있는 말이지 사회 문제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품격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하위 80%의 인류를 지워버린다면 상위 20%만 남은 고귀한 세상이 될까요? 아니죠. 그 상위 20%는 다시 상위 20%와 상위 80%로 계급을 나누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은 상위 20%를 희생시켜서 하위 80%의 삶을 보장하자는게 아닙니다.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다듬고 잘 적용시켜서 당당한 상위 20%를 만들고, 사회 및 경제 구조를 변경해서 하위 80%가 평생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도태되는 인구는 국가가 보호해서 그들의 다음 세대는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죠. 여기서 물음표가 생깁니다. 비용문제죠. 그걸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내 나이 38, 내가 80세가 되었을때 대한민국의 모습이 정말 궁금합니다. 과연 어떤 나라가 되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