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시사하는 점

일상|2018. 2. 10. 19:40

전 다음달부터 백수가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직업은 있으나 직장이 없는 상태가 되지요. 적지 않은 나이에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비전'에 대한 불안함 때문입니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친 뒤에 내린 결정. 아마 제가 지나온 그 과정은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신조어 '워라밸' 에 대한 고민이겠죠. 저도 당사자로서 이에 대해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정책'을 결정하고 '기업'을 운영하는데 참고가 됐으면 좋겠네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신조어, 보통 '저녁이 있는 삶' 이라는 표어로 많이 회자되는 개념이에요. 정시출근, 정시퇴근, 퇴근 이후 및 휴일 업무 독립, 직장의 고용 안정성까지 포함되는 이야기. 개인의 시간과 삶을 중시하는 세대가 사회 초년생으로 등장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죠. 그래서 2018년 화두 키워드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기업에서도 탄력근무제나 퇴근 시간 이후 소등 같은 대책을 내놓으며 기업 이미지 재고에 힘쓰고 있어요. 하지만 대다수의 근로자에게는 '사치'에 가까운 구호일 뿐. 왜 그럴까요?

 

 

■ 선택의 가치관이 변하다.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워라밸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적어볼게요. 두 사례는 저와 제 지인의 이야기로 제가 직접 당사자에요. 즉, 소설이 아니라는 말. 일부의 경험을 전체의 입장으로 표현할 생각은 없고 다만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으니 참고만 하시기 바랄게요.

 

1. 월급 200 보다 150 에 정시퇴근

 

제가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사하고 개인 사무실을 열었어요. 1인 사무실 개념이라 혼자 운영하며 예전 동료들과 가끔 만나며 일 이야기를 나누게됐는데 만났던 3명 모두 저와 함께 일하기를 원했어요. '150 밖에 못 주는데 괜찮아?' 라고 물었을때 3명 모두 같은 대답을 했지요. '200 받고 매일 야근하는 것보다 150 받고 정시퇴근 하는게 더 나아요.' 속 내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가더군요. 제가 그들의 상사로 있을때는 대표와 다른 부서 팀장과 업무 조율을 해서 직원들이 퇴근시간 30분 전에는 끝낼 수 있도록 했어요. 비록 저는 회사를 같이 키우는 입장이라서 밤 11시, 자정 넘게도 야근을 밥 먹듯이 했지만 직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받는 돈이 틀린걸요. 그런데 제가 퇴사를 한 뒤에 대표가 돈 독이 올라서 일감을 잔뜩 물고와서 던져줬다네요. 밤 9시, 10시까지 야근, 주말에도 출근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일상의 반복, 소심한 성격에 예민한 직원 하나는 쓰러졌지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결국 저와 합류하기로 결정을 내렸었죠.

 

2. 안정적인 직장보다 발전할 수 있는 직업

 

이건 제 이야기입니다. 현재 제 직장은 아주 안정적이며 탄탄한 곳이에요. 하지만 그곳에서 제가 하는 일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현재 제 월급 수준 밖에는 안됩니다. 또 앞으로 제가 아무리 잘 끌고 가더라도 제 월급이 달라질 가능성은 적어요. 거기에 제가 인센티브를 받으려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열심히 하게되면 받는 돈보다 제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죠. 충분히 인정을 받으면서도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는 상황이 발생해요. (월급은 그대로인데 일하는 시간이 길어져요.) 그런 상황으로 인해서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 퇴직을 결심했어요.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일단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작년에 제 자리가 제 삶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일들을 겪으면서 도전을 결심했죠.) 물론 그 일에 대해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고, 반 년에서 1년 정도는 무일푼으로 버틸 각오도 되어 있어요. 1년 정도 안정적인 소득을 포기하더라도 '기대'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퇴직을 결심했지요.



 

이제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삶, 비전,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요. 이것이 신조어까지 생기면서 화두로 떠오른것은 '불편부당'한 경우를 겪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에 대해서 정상적인 조치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럼 이제부터 왜 그런지 한번 이야기를 해볼게요.

 

 

■ 워라밸 정착의 관건

 

이미 이에 대해서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대책을 내놓고 있어요. 퇴근 시간에 강제로 사무실을 소등한다거나, 컴퓨터의 화면을 끄거나,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운영하는 등의 대책들이죠. 하지만 실제로 효과를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왜냐하면 현상에 대한 1차원적인 대응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 기업은 생각을 고쳐야 할거에요. 생색내기를 할 요량으로 이런 식으로만 하다보면 분명히 가장 중요한 순간에 문제가 터질거에요.

 

현재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유관성이 강해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까지 아주 건재한 상태로 하나의 사회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죠. 덕분에 어느것 하나 당사자가 아닌게 없기에 어떤 정책을 펼쳐도 실효성을 거두기 힘든 상황이에요. 인구의 연령이 늘어나면서 자연사망자가 늘고 그만큼 젊은이의 비중이 증가하면 어느정도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겠지만 그 안에서 우리도 구조적인 개선 전략을 마련해야되요. 이게 최우선 과제에요.

 

왜냐하면 위에 개인 사례에서도 보듯이 '노동력이 만들어내는 가치'의 크기가 워라밸 정착에 핵심 선결 조건이니까요. 지금 우리는 1의 노동력으로 0.8의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야근을 강요할 수 밖에 없는거에요. 이 구조를 개선하려면 생산 가치가 높은 산업 위주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되요. 1차 산업 종사자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들의 일에 대한 생계를 국가 차원에서 보조하는 한편 새롭게 사회에 진입하는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생산 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유도하는 행위들이 필요해요. 물론 이는 교육부터 기업 육성 등 많은 부분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되요. 그 과정을 통해서 자영업으로 전환되는 근로자들을 제도권 안의 산업으로 끌어들이게되면 시장과 기업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워라밸과 구조적인 문제가 무슨 상관인지 모를수도 있어요. 하지만 예를 들면 간단하죠. IT 업종의 경우 잘 돌아가면 수익이 비용에 비해서 월등히 높아져요. 그럼 기업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근로자를 더 고용할 여력은 충분하죠. 같은 일을 더 많은 사람이 하게되면 자연스럽게 1명당 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탄력근무제나 정시퇴근을 하더라도 회사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게되요. 그럼 연월차를 사용하는데도, 육아휴가나 출산휴가, 생리휴가, 아이들 유치원 등원을 위해 10시에 출근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요.

 

여기까지는 원론적인 이야기였어요. 그럼 이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볼게요. 먼저 현재 우리나라에는 근로기준법이 있지만 그 법에 적용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수 많은 자영업, 수 많은 소기업,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불편부당한 대우에도 꾹 참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에요. 재계 서열에 이름을 올리는 곳들도 생색내기로 직원들의 등을 떠밀 뿐. 애초에 워라밸을 지원할 마음이 없어요. 하지만, 급여 유지와 고용 창출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 기업문화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입으로는 변화를 외치지만 개개의 근로자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똑같거든요. 만약 사주 개인의 탐욕으로 생색내기로 그친다면 이는 해당 기업이 이 사회에 존재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사항이고 사측의 재무구조가 급여 보장과 추가 고용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아직 근로자의 의식 수준에 비해 기업의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는거에요. (이런 기업은 점진적으로 변화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지요)

 

■ 아직은 개인의 문제다

 

현실적으로 기업에게 강제로 근로자 모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라는 것은 폭력이에요. 구조가 바뀌고,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의 크기를 높이고, 그만큼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되요. 법안을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10년, 20년 일관된 정책을 시행해서 사회 구조를 바꿔야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기업도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할 여력이 생길거에요.

 

그래서 갑작스럽게 2018년에 떠오른 워라밸 열풍은 사회나 기업의 측면보다는 개인에게 던져지는 화두가 아닐까 싶어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적합한 일을 찾고, 좋은 직장을 선택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 이걸 강조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전 그 선택을 했고, 젊은이들은 이제 그런 삶을 원하니 제가 그 시절에 하지 못했던 '노력'을 하겠네요.

 

이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기업이 노동력을 이용해서 만들어내는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단순히 강제한다고 이루어질 문제였다면 애초에 야근 문화가 없었겠죠. 적어도 야근을 하는 문화가 배척을 받고 서서히 줄어들었을거에요.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여전히 능률과 창의성보다 단순 노동력이 더 필요한 구조. 하나하나 조바심 내지말고 근로자, 나아가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관성 있고 적확한 정책이 필요한 시기인것 같네요. 10년쯤 뒤에는 많은 직장인들이 부족하지 않은 소득을 보장 받으면서 개인의 삶을 즐길 수 있는 대한민국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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