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귀신님 정주행 후기 (2015년 드라마)
영화 너의 결혼식을 보고 2015년에 TVN에서 방영된 오 나의 귀신님(이하 오나귀)을 정주행했어요. 1회부터 16회까지 다 본 느낌은 본방 당시에 내가 봤던 그 드라마가 아니네? 였습니다. 3년 사이에 제게도 이 드라마가 다르게 보일만한 일이 있었나봐요.
본방때는 김슬기 때문에 봤죠. 밝고, 긍정적이고, 당차고 연기도 괜찮아서 국가대표2도 봤을 정도로 관심이 있던 배우였거든요. 그래서 어제까지 정주행하면서 본 오나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박보영 부분을 보게 됐으니까요. 3년전에 봤을때 마지막회 하이라이트 장면을 빼고는 뽀블리와 관련된 장면이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었거든요.
배우의 연기력을 볼 수 있을정도로 감성적이지 않아서 욕을 하고 싶을정도로 연기가 엉망이 아니라면 크게 신경을 안 쓰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여자배우에게는 처음으로 '박보영 연기 미쳤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뽀블리의 실제 성격이나 생활 속 모습은 어떨까?' 이런 궁금증까지 들어서 '연예인 이름 + 인성' 이라는 단어까지 검색해봤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스토리, 대본, 연기, 연출, 케미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너무 빛났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초반에 한 풀기로 작정한 처녀귀신 신순애(김슬기)가 나봉선(박보영)에게 빙의한 후 보여주는 대책없는 캐릭터는 극강의 매력을 발산했어요. 중반부터는 두 캐릭터 모두 강선우(조정석)에 대한 진심을 갖게되면서 서로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것도 너무 좋았어요.
사랑과 빙의를 통해서 봉선이는 업되고, 순애는 다운되면서 극단적인 두 캐릭터가 조증과 울증의 사이에서 만나는 모습을 캐릭터의 대사가 아니라 상황, 표정 등의 연기로 표현된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작가도 미쳤네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디테일이 완벽했어요.
당시 시청자 중 몇 분의 후기를 보면 첫 빙의가 풀린 후에 봉선의 태도가 전과 다르다고 말한 분들이 많았는데 전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빙의된 봉선이 그녀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바꿨으니까요. 그 태도를 대하는 봉선도 자연스럽게 행동이나 태도가 바뀔 수 밖에 없죠.
그런 과정이 몇 번 더 이어지면서 두 캐릭터가 적당한 선에서 만나고 각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성장드라마가 바로 이 오 나의 귀신님이거든요.
※ 저는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말을 더듬어요. 그런 저도 상대의 태도나 표정이 바뀌면 말 더듬의 정도가 달라져요. 이게 선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거든요. 특히 편하게 마음을 나누는 상대와 단 둘이 있을때는 더듬는 정도가 많이 완화되죠. 극 중 나봉선도 자라온 과정에서 겪은 경험이 초반 캐릭터를 만들어준거라서 처녀귀신 빙의라는 드라마틱한 설정을 통해서 시청자가 느낄 정도로 태도나 행동이 변한거에요. (현실에서는 설정 자체가 평범해서 그 변화가 바로 느껴지지 않죠.)
생각해보면 남녀간의 사랑, 사람 사이의 우정은 항상 개인의 인간적인 성장과 연관되어 있어요. 원래 이기적인 인간이 이타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감정으로 인해서 겪게되는 많은 순간들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거죠.
어찌됐든 여러가지 이유로 이번에 오 나의 귀신님 정주행은 꽤 행복했던 경험이었습니다. 대리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을 느꼈어요.
※ 가끔 이런 드라마를 보면 사람(자기가 원하는 표정과 말투, 억약, 몸짓과 함께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뱉을 수 있는 사람들)들이 참 부러워요. 드라마처럼 극적인 상황은 없어도 자기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잖아요.
신기하게도 이 드라마를 볼 때 부러움은 별로 없었어요. 30대 후반 아재가 촬영 당시에 20대 중반이었던 뽀블리를 보면서 '귀염 터진다'면서 엄청 웃느라 바빴거든요. 또 극 중에서 봉선이 조금씩 밝아지는 모습이 너무 흐뭇했죠. 드라마인데도 '아 쟤는 나처럼 안 살겠구나, 잘 됐다.' 이런 감정이입을 하느라 바빴어요.
이제 보는 내내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던 오 나의 귀신님 스틸컷을 날라다 붙여봅니다.
▲ 순애가 빙의된 봉선의 행동을 강선우가 다 받아준건 자신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서 막내가 아프다는 죄책감이나 책임감 때문은 아니었다. 극 후반에 나오지만 선우의 학창시절을 닮은 나봉선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었던거지. 결국 그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하지요.
* 솔직히 너의 결혼식 같은 작품 속 박보영 모습은 예쁘고 러블리한데 엄청 매력적이지는 않다. 오나귀에서 미친 매력을 선보인 이유는 아마도 대본의 힘이 컸겠지. 초반에 저렇게 들이대는데 정말 귀여워서 미치는줄 알았다.
* 최근 작품들을 보면 뽀블리는 연약하고 착한 캐릭터보다 오히려 떽떽거리고 툴툴거리는 말괄량이 캐릭터가 더 매력적인듯 싶다. 잘 어울려. 근데 이 아줌마, 늑대소년 말고 연약하고 착한 캐릭터를 한 적이 있나? 없는것 같은데?
▲ 오 나의 귀신님에서 정말 쉬지않고 나오는 두 사람의 키스 장면
※ 사실 이 장면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연애 감정을 느끼고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 내내 봉선의 몸에 순애가 빙의되어 있었잖아. 그런데 이 장면에서 순애가 튕겨져 나오면서 비로서 선우를 좋아하는 봉선이 그 상황과 마주하는 장면이거든. 아마 이 장면에서 순애가 튕겨져 나가지 않았으면 선우와 봉선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게 바로 선우와의 관계에서 나봉선 본인이 거의 개입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게 중후반에 서로 잠시 떨어져있게 되는 이유가 된다. 저 사람 몸을 내 옆에 붙잡아두는건 짝사랑 할때나 갖는 욕심이지 결국 같이 있으면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에 대해 신뢰와 믿음을 쌓으며 사랑을 키워야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순애가 차지해서 문제가 되는거지.
* 글자로 쓰니까 되게 길어지는데 그냥 데이트하고, 같이 놀고, 같이 웃고, 같이 싸우고 하면서 서로 시간을 공유하는게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 난 꼬르동(곽시양)이 봉선이한테 마음이 있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냥 인간적인 관심이었나? 그건 아직도 모르겠다. 아 오토바이 헬멧쓰고 취해서 정신못차리는거 너무 귀엽다.
▲ 이건 뭐 다들 잘 아는 남자들의 로망 와이셔츠 착용 장면이다.
▲ 선우를 사랑한 순애가 봉선을 밀쳐내고 떠났을때 한 뼘 더 성장한 봉선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상황은 살짝 아팠는데 선우 입장에서는 얼마나 귀엽고 예뻤을까 싶더라.
※ 사실 진짜 압권은 박정아랑 박보영이 소주 마실때겠지. 술에 취해서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거죠?' 라며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타인의 동의를 구하는 장면이었는데 조금 짠하고 귀여웠다. (술 취해서 박정아랑 악수하는데 진짜 멍뭉이 닮았더라.)
※ 근데 이 드라마에서 사람들의 성장은 친구를 얻는거더라. 마음가짐의 변화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을 얻는거였어. 봉선이는 순애의 가족을 내 편으로 얻었고, 선우를 사랑으로 얻었고, 선샤인 식구들을 우정으로 얻었다. 사람답게 사는게 저런거지 부러운 캐릭터였다.
▲ 오 나의 귀신님 최종회 하이라이트, 역대급 키스신이다. 한껏 예쁘게 꾸미고 러블리하게 돌아온 봉선과 선우의 2년만의 스킨십. 확실히 예쁘기는한데 난 다른 장면에 더 많이 꼿혔다.
* 드라마를 보는 내내 박보영 손이 계속 눈에 들어오더라. 아가손.
▲ 바로 요 의상을 입고 찍었던 모든 장면이지. 아마 한강고수부지에서 자전거를 타는 에피소드를 촬영할 때였을텐데? 빙의가 안 된 봉선이었다. 다른 예쁜 의상, 예쁜 상황도 많았는데 유독 이 장면이 참 예뻤다. 특히 자전거 안장 도둑을 잡고 경찰과 대화하는데 박보영 정수리에 조정석이 팔을 괴고 있을때의 그 케미란 정말 예뻤다.
▲ 내가 꼿히는 장면은 이런거지. 힘쎈여자 도봉순때도 박형식 아지트 소파에서 같이 잠들었을때가 제일 예뻤는데 오 나의 귀신님에서도 결국 이런 장면이 제일 인상적으로 남네요.
아 진짜 작가 칭친하고, 뽀블리 칭찬하고, 케미 칭찬하는걸로 후기를 꽉 채웠네요. 앞으로 가끔 긍정 에너지를 얻고 싶을때 봐야겠어요. 초반에 러브라인 없을때 순애가 빙의된 봉선이 선우에게 들이대는 그 모습은 정말 최강 애교 캐릭터일듯 싶네요. 봉순이나 승희까지도 그냥 러블리 캐릭터였는데 봉선이에서 완전 빵 터졌네. 이번 정주행은 정말 대만족입니다.
* 만약 빙의설정과 대본에 녹아있는 디테일한 감정들이 없었다면 오나귀를 봤어도 그냥 예쁘고 러블리한 여자 배우정도로 남았을텐데 작품이 좋아서 배우가 확 살았네요. 덕분에 입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