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_ 류승완 이름값에 대한 실망

취미|2018. 1. 24. 20:05

류승완, 군함도의 각본과 연출을 책임진 사람의 이름. 이것이 내게 갖는 의미는 '아라한장풍대작전'에서부터 시작한다. 동생인 류승범을 배우로 데뷔시키고, 무술감독 정두홍을 내게 알게 해 준 영화. 그 뒤에 짝패, 주먹이운다,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까지 다소 투박하고 어둡지만 그 만의 느낌을 잘 살려낸 영화들로 신뢰를 쌓은 감독이다. 그가 군함도의 감독임을 알았을 때 강제징용의 참상을 아주 현실적으로 잘 그려낼 줄 알고 기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미장센만 훌륭한 그저그런 블록버스터였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과, 상황들과, 이러저리 얽혀있어서 풀지도 못하는 실타래 같은 전개들. 마지막 20분은 마치 '이거 탈출 블록버스터야'라고 절규하듯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무슨 평을 해야할까? 난 그의 각본에 초심이 없어졌다고 평하고 싶다.
 

 

영화를 보기 전, 온라인 평점과 댓글을 봤는데 캐릭터만 보여서 아쉽다는 내용이 많았다. 정말? 무슨 소리지? 캐릭터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한 컷, 한 컷 심혈을 기울이느라 연결을 신경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황정민, 소지섭, 이경영, 이정현 모두 각각 자신의 몫을 다 해서 연기를 했지만 작품 전체에서는 기억에 남는게 없다. 그저 이소희 역에 김수안 (아역배우)만 기억에 남을 뿐이고, 탈출을 하려고 천으로 연결한 끈을 타고 내려가는 무명 여자 배우의 표정만 기억에 남는다. 밑에 사람들이 천이 끊어지면서 다 떨어지고, 남은 한 조각을 붙잡고 위로 올라가지도 아래로 내려가지도 못한 채 송중기를 바라보던 그 여자배우의 표정. 추락.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김수안 양의 노래.

 

영화로서 132분의 런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끌어간건 박수를 받을 일이지만, 캐스팅이나 언론의 집중도, 배경이 된 군함도의 역사적인 가치를 이용해서 이 정도밖에 못했다는데 아쉬움을 표한다.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로맨스 지상주의. 제발 좀. 인간 대 인간으로 다루는것도 못하는데 그 와중에 로맨스를 넣다니. 류승완의 이름값이 왠지 초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런 후기를 남기는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재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박열 속 내무대신으로 출연했던 배우분이 하시마탄광 소장으로 등장했을때만해도 기대감이 꽤 됐는데 그 뒤로 계속 '잘못 선택했다'라는 생각만 들더라.

 

'그냥 영화를 취소하고 맥주나 마시러 갈걸...'

 

<다른 이야기>

 

박열 속 관동대지진 당시에 일본의 자경대는 조선인에게 15원 50전을 발음해보라고 하고 발음이 어눌하면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이건 사실이다. 그때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일본 내 사회적 위치도 저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 징용된 사람들에 대한 처우는 어떠했을까? 인간 이하의 대우와 고된 육체노동을 폭행과 고문을 통해서 강요 받았겠지.

 

이건 역사를 몰라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노예에게 편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충분한 식사와 수면시간을 보장하는가? 최소한 탈출 블록버스터 전에 이런 부분이 좀 더 짜임새 있고 현실적으로 그려졌어야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군함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렇게 참혹하지 않았다. 분명 더 참혹했을텐데. 아쉬웠다. 내 눈에 군함도 속 상황들이 그 시절치고는 상당히 편해보였다는것. 그게 너무나 많이 아쉬운 영화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미쓰비시 소유의 하시마 탄광에서 노역할 근로자를 공급받는데 현지 거주 조선인도 아니고 한반도의 조선인들을 징용해서 끌고 갈 수 있었느냐에 대한 부분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분명 그 부분만 잘 부각했어도 좀 더 나았을텐데.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하시마탄광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함께 제시된 권고사항을 아직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일본의 행태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최소한 이 소재를 돈벌이에 이용하지는 말았어야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내세워서 일본이 우리는 그 당시에도 문화국으로서 하시마 탄광을 운영했다고 면죄부를 받을 판이다.

 

내가 본 영화는 그저 킬링타임용으로도 적당하지 않은 욕하기 애매한 블록버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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