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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빅 픽처 -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일상|2018. 2. 11. 08:45

빅 픽처의 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있다.

'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싶었던 한 남자 이야기'

이 말을 믿고 책을 본다면 실망할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박학다식한 면모와 예술적인 면들을 글에 녹여내는 솜씨, 그리고 미국에 대한 정치적 적대감으로 인해서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더 열광하는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 '빅 픽처' 이 책을 접한 것은 트위터에서 방송하는 '미녀들의 책 수다'를 통해서였다. 어쩌면 새로운 삶이라는 달콤하고 달달한 단어와 아마추어도 되지 못하지만 뷰파인더의 뒤에 숨는 것을 좋아하는 지금의 모습들이 '빅 픽처'를 집어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는 역자의 말에서도 언급되고, 책을 소개하는 면에서도 나오지만, '새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에게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감성은 그것을 부정한다. '빅 픽처'는 우연이 만들어낸 사진 한 장이 빚어낸 도망자의 마지막 모습, 하찮은 아마추어 사진가가 있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책을 소개하거나 찬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꿈 꾸는 모습을 현상해 놓은 책으로 묘사하지만, 사실 '빅 픽처' 속 밴 브래드포드의 선택은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는 개척자가 아니라, 살인자의 도피 행각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판을 뒤로하고, 이 책은 내게 쉼 없이 읽을 수 있는 속도감과 긴장감을 주었고, 더글라스 케네디가 한껏 뽐내며 적어 놓은 카페라 기종이나 종류들, 필름들의 종류와 각종 의류, 상품들의 브랜드명, 아는 사람만 아는 지명과 지번, 도로 명에 매력을 느꼈다. 사실, '빅 픽처'를 읽는데 가장 방해꾼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잘 찍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는 것도 많지 않지만, 사진에 대한 설명들이나 묘사들은 상상이 가능했고, 미국과 관련된 각종 지명들, 자동차 메이커들 기타 각종 브랜드의 홍수들은 그냥 '고급'으로 일축했다. '빅 픽처'을 읽으면서 이 책에 나온 문장들, 브랜드들, 암실의 풍경들을 하나씩 정리해서 이미지로 게시하면 그것 자체로도 하나의 포토북이 될 듯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방해꾼이거나 단순히 책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난봉꾼이겠지만, 그래도 '고급'으로 일축해서 넘겨버리면, 더글라스 케네디라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책 '빅 픽처'는 총 3부로 구성되고, 각 부는 장으로 구성되어 장면들, 내용들을 나누고 있다. 1부는 베스와 밴의 결혼생활을 담고, 2부는 아내의 외도를 접한 남편의 심경, 그리고 3부는 밴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게리로 살게 되는 그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사실 1부와 2분의 경우 무료하고, 답답하고, 위험하고, 분주하고, 그러면서도 안쓰러운 밴의 모습들, 그리고 심경들에 초점이 맞춰져있어서 그리 잘 읽히지는 않는다. 그나마 대화로 이어지는 전개가 빠른 편이고, 지루하지 않고 자극적인 모습들(싸움, 다툼, 갈등)이 1부와 2부를 이끌게 된다. 하지만 3부는 좀 다르다. 뭐랄까? 읽는 맛이 있다. 그가 뉴크로이든에서 벗어나서 몬태나에 이르기 까지의 심경들과 행보들, 몬태나의 마운틴폴스에서 잠시 머무르기로 하고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떠나고 싶어 발을 동동구르는 게리의 모습들, 그리고 앤과의 관계와 그 관계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답답한 한계들, 그리고 게리를 밴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와 그 관계에서 루디워렌과의 관계들, 사실 마운틴폴스에서 루디워렌과의 만남들은 내게는 신선한 재미를 느끼게 해 줬다. 대신 앤과 게리의 관계는 그냥 성욕 해소를 위한 중년 남녀의 불장난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3부는 가장 재미있었지만, 가장 아쉬웠던 부분도 많다.

 

3부를 들먹이면서 아쉽다라면 첫째는 게리로 변신한 밴의 무지함이었다. 신탁기금을 바라보고 한량처럼 살아가야 하는데, 그는 자신을 알리고 싶어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듯 스리슬쩍 발을 빼지만, 우연이 잘 나온 인물사진을 팔아서 돈을 충당할 생각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겠지. 만약 그가 밴을 버리고 게리로 살아야했다면, 그는 중국에서 말하는 점소이(아르바이트 점원)나 카메라 가게 점원 혹은 사장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실어야 하는 사진 판매사가 된 것이다. 좋게 말해서 사진가였지만, 그는 도망자였다는걸 명심하자.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책을 읽기 전에는 우연히 찍은 사진들이 유명해졌다고 했는데, 게리는 사진을 찍을 때는 자신의 과거들을 몽땅 잃어버리고 뷰파인더 뒤에 숨으면 뭐든것이 해결될 거라는 맹신을 그 순간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벌어질 일들에서 아주 기발하고, 예상치못하게 일이 꼬여간다. 개인적으로 책을 완전히 읽기 전에는 정말 우연히 암실에 걸어둘 사진으로나 찍었던 사진들이 알려져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1부와 2부에서 열심히 전개했던 그의 삶에 대한 고민들을 펼치기에 3부에서 그의 모습은 앞선 글장난의 무게에 보답하지 못했다. 이게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런 불만으로 '빅 픽처'를 비난 여론의 한 가운데에 던질 수 없다. 어쨌든 재미는 충족했고, 작가의 박학다식한 면도 많이 보였다. 역자는 사진관련 묘사가 뛰어나다고 했는데,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뛰어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역자는 칭찬으로 그 말을 했겠지만, 사진관련 묘사가 뛰어났다면 오히려 이 책은 방향성을 잃었을 것이다. 나도 묘사가 별로 뛰어나지 않았다. 현상과정과 암실에 대한 이야기 각 필름들과 뷰파인더 속의 인물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그리고 현상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무언가를 발견한 게리의 심리적 묘사 등이 이루어졌으면 좋았겠다. 라고 불평을 늘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곧 다른 물음을 던졌다. 과연 그랬다면 이 책은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 3부의 전개가 너무 빨라서 일 수 있고, 필요 없어서 일 수 있지만, 밴은 게리로서의 삶, 밴으로서의 삶, 그리고 뒤이은 사건들에서 자신의 거취문제를 타인에게 의존한다. 즉, 그는 ' 네 뜻에 따를게' 라며 착한 사마리안 흉내를 내지만,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그가 계속 도망을 생각한것은 벌을 받는 것보다 이미 베스에게 벌어진 일들, 그리고 죽은 밴에게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는 과정이 겁났을 수도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점점 밴이 게리로서 살아가야 할 이유들이 쌓여간다고 느꼈다. 물론 3분에서는 그런 모습들이나 심경 변화, 갈등 보다는 단지 피하기 위한 게리의 행동이나 그가 간신히 잡아가는 행복들을 다루고 있지만, 적어도 실제 게리로 변신한 밴의 모습이었다면, 앤과의 관계에서 한번쯤 베스와의 얽힌 문제들이 아주 무거운 짐으로 어깨를 눌러대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다. 이래저래 불평불만이지만,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면, 장황하게 적어내려가서 설명문을 만드는 것 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판단이 옳은 것이다.


난 빅 픽처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상류든 하류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가장들. 그들이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포기한 단 1%의 무의식.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 1%를 끄집어내기 위해 500페이지의 글을 썼다.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면, 사진 속 게리의 모습에서 위안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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