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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용의출현 후기 (남은건 거북선뿐)

취미|2022. 9. 2. 10:55

7월 말에 개봉한 영화 한산 용의출현 후기를 남깁니다. 워낙 당시 상황에 관심도 많고, 이를 주제로 제작한 컨텐츠에서 재미를 느끼다보니 기대를 했던 작품인데요. 이미 본 관람객, 실제 지인들에게 그럭저럭 괜찮다는 반응을 전달받아서 기대감이 살짝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리고 막상 작품을 본 후기입니다.

 

'알바 대규모 고용?, 평론가 평점 7점? 참내'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서 제 개인 평점과 한 줄 평을 남겨봅니다.

 

평점 7점 - 제작진과 배우들이 고생이 많았수다.

 

'감독의 고민이 부족해서 개밥이 되었구나.'

 

좀 더 길게 평을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캐릭터를 눌러놨으면 그 외적인 부분에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줘야되는데 그것이 없었다. 스토리는 뒤엉켰고 생략은 선은 넘었다. 등장 인물은 많은데 하나도 안 보였고 그나마 보였던 와키자카는 막상 전투를 할 때 멀뚱멀뚱 구경하다가 돌격하더니 터졌다. 거기에 마지막 포격 장면은 물음표를 연상시켰다. 저 화력이면 부산을 쓸어버리고 일본 본토 정벌도 했겠네. 압도적인 승리 뒤에 있는 고민과 전략, 전술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부족했다고 느낀다. 덕분에 앞의 서사도 뒤에 절정도 제 역할을 못하고 밋밋한 동영상 1편으로 전락하였다.

 

사실 영화 한산 용의출현을 보기 전에 내가 기대했던 전반부 서사는 전략과 전술에 대한 부분이었다. 전라좌수군의 존재를 몰랐던 왜적과의 전투와 다른 국면의 첫 전투였잖아?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그 이야기의 열쇠를 제자리 선회하여 재장전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으로 풀어냈다. 이번 작품은 그 열쇠를 어떻게 풀어낼까? 이것이 내가 작품을 보기 전부터 기대했던 바다.

 

난 몇 천원, 몇 만원 주고 감상하는 관객, 제작자들과 감독들은 그 일을 업으로 삼아 돈 버는 프로들이니 더 나은, 더 기발한, 더 재미있는 상황을 기대하는건 당연한것 아닐까?

 

하지만 영화는 후반의 피날레를 위한 전반 서사를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만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전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마디만 남긴다.

 

'전반 서사에서 와키자카는 전략적인 모습과 철저한 대비로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왜 전투 막바지에 들어서는 지기 위해서 발악을 하는거냐? 56척 vs 73척이었다. 적이 넒은 바다에 학인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전반부에서는 머리 좋은척 하더니 후반부에서는 용인에서 1500으로 5만을 잡았는데 저까짓거 못 잡겠어? 라고 달려드나? 그것도 한 방에 끝날 수 있게 판옥선 바로 앞에서 각개산개 후 도선이라니? 결말이 그렇다면 전반부에서 그 내용을 녹였어야되는데 앞, 뒤가 맞지 않는다.'

 

* 불멸의 이순신이 오류가 많지만 그래도 한산도 대첩이 볼 만한 이유는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극의 상황에 개연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20여 척의 조선군, 학익진, 70여 척의 일본군. 와키자카의 확신(1군은 버리고 재장전 시간에 들이쳐서 진을 깨 대장선을 잡으면 승리한다.)은 유인책인걸 알면서도 전군이 진격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선회를 통해 재장전 시간을 극복한 조선군의 대승으로 끝난다.

 

성의가 없다.

 

감독이 각본을 맡은 작품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주제 자체가 워낙 크다보니 관심이 많았다. 또 전작인 명량이 신파와 국뽕, 마지막 대사 한 줄 등의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지만 앞, 뒤의 이음새가 좋았고 전투도 볼만했기에 기대감이 아예 없었던건 아니다. 명량에서의 뭇매로 더 고민하고 더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이었을테니 더 좋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방금 명량과 한산을 찾아보니 한산은 감독이 다 썼고, 명량은 작가와 같이 썼네. 이 차이가 이만큼이나 큰 것이다.

 

하나 물어보자.

 

감독은 초고를 쓰고 몇 명의 프로에게 초고를 돌리며 수정을 했나? 보통 아마추어의 초고는 프로 4~5명에게 순서대로 돌려지며 수정과 첨언의 과정을 거치는데 한산 용의출현의 초고는 어떤가?

 

아마도 없었을껄?

 

시나리오 작가와 갈등을 빚어가며 작품을 만드는것도 싫어서 자기가 다 썼는데 남에게 초고를 돌릴리가 있을까? 저 정도 갈등도 귀찮고 자존심 상해서 피하는데 만든 작품이 괜찮을리가 없다. 영화라는건 작가와 감독이 피 튀기며 싸워서 얻은 결과물인데 작가가 없으니 감독의 수준만큼 만들어진거지.

 

'돈 쥐고 배우들 사서 대사나 치게하고 그걸 찍으면 다 영화인가?'

 

시장에서는 명량보다 낫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 눈 씻고 봐도 나은 구석이 없다.

 

* 한국 영화 시장은 코딱지인데 감독들의 영향력은 스탭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신과 같을테니 극락에서 살겠구만. 그 극락은 내부적으로만 누리길 바란다. 굳이 밖에 드러내서 욕 먹지 말고요.

 

그럼 영화 한산 용의출현 후기에서 스냅샷 몇 장을 보면서 잡담이나 남겨보자.

 

* 스포일러 만땅!

 

▲ 캐릭터를 꾹꾹 눌렀던 작품에서 유일하게 보였던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는 용인에서 1500명으로 5만의 조선군을 섬멸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이순신과 견내량에서 전투를 치룬다. 그의 영지는 3만석, 최대 병력 동원 능력은 1500명이다. 용인에서의 병력이 그의 전체였다는 뜻이지.

 

* 불멸의 이순신에서 수군 최고의 장수니 뭐니 하면서 너무 대단하게 그렸던게 문제다. 그걸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받아 캐릭터를 만들었으니 후반부가 어설프지. 차라리 전력 1500의 작은 다이묘가 용인 전투 승리에 취해 무리하다가 싹 쓸린 전투로 그렸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 어릴때 내 꿈이었던 공간과 비슷한 구조의 공간이라서 찍어봤다. 늙어서 하늘 가기 전에 꼭 갖고 싶다.

 

▲ 절제를 하려고 애를 쓴 탓일까? 변요한보다 더 보이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다.

 

▲ 조선 수군 전체가 모여서 학익진을 연습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봐야되는 부분은 선회로는 왜군의 속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부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 명량에서 이정현이 한산에서는 김향기로 나온다. 와키자카의 수발을 들던 기생이자 조선군 세작인데 중간에 신분을 들켜서 혀를 깨물어 말을 못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웃겼던 것은 와키자카가 동네 버릇없는 오빠도 아니고 보름이 휘두른 단도에 맞고 붕대까지 감더군. 기녀가 휘두른 칼에 스친것도 아니고 가슴팍에 칼이 들어갔지. 에휴.

 

* 와키자카가 작은 영지를 가진 다이묘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히데요시의 칠본창 중 한 명인데 너무한 설정 아니오?

 

▲ 많은 후기에서 이순신 장군의 지략을 잘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추천한 학익진 대형 구성 장면이다. 저게 특별하게 보였나? 아니 저렇게 안 하는 사람도 있어? 아이들 세울때도 키 맞춰서 세우는데 저게 특별하고 전략적인 면을 잘 보여줬어? 할 말이 없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난 마지막 교전에서 거북선의 활약을 예상했다. 진을 구축할때까지의 시간을 버는 역할일거라고 예상이 가능했던 장면이다.

 

*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거북선을 활용한 전투 장면만 마음에 들었다.

 

▲ 왜군의 함선이 이순신의 학익진을 향해 돌격하는 장면이다. 이대로 쭉 대장선까지 돌진했으면 1/3이 초반 포격에 날아가고 그 뒤에 2/3가 대장선과 그 주변을 정리했을거다.

 

▲ 그런데 포를 쏘지 않고 포위를 한 상대와 가까워지자 한 방에 정리되기 위해서 왜군의 함선들이 일제히 판옥선에 1:1 매치가 되기 시작한다. 극 중 이순신은 포탄과 조란탄을 같이 장전하여 포격을 대기하는 상태였다. 한 발의 포격 뒤에는 무조건 백병전이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포 한 방에 다 전멸해주겠다고 저렇게 달려들고 있다. 앞에 이야기는 다 헛소리였던거지.

 

▲ 그리고 모든 고민을 깔끔하게 포 한 방으로 끝내버린다. 화포의 위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돌진하는 선박을 갈라서 침몰시킬 정도는 아닐텐데 어이가 없었다. 전투 장면도 뿌옇고 정신없게 지나가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 알밥들이 후반 전투씬이 압도한다고 난리던데 이걸 말하는건가? 할 말이 없다.

 

▲ 그 와중에 거북선의 활약은 마음에 들었다. 판옥선 본체에 상판을 얹고 용머리에서 연기를 뿜고 전후좌우에 포를 달아 돌격선으로 활용했던 거북선. 기본적으로 왜선에 비해서 구조적으로, 재질적으로 내구성이 우수했기에 가능했던 특수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돌격선의 활용법은 간단하다. 화포가 없는 적의 중앙으로 다 맞아가면서 들어가 전후좌우로 포를 쏘는 것이다. 그걸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봤기에 이건 만족한다.

 

엊그제 지인과 한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지인은 '그 정도면 볼만하게 만들었잖아?'라고 말하던데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다른 영화도 아니고 한산이 '그럭저럭' 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포장되어 넘어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찬티만 가득한 판에 혼자 안티를 해 본다.

 

'돈 갖고 장난치지 마쇼들~'

 

사족

 

지인의 평에 따르면 그마나 올 해 본 한국영화 중 한산이 괜찮은 편이라고 했었다. 비상선언이 최악이고, 헌트는 썩 잘 만든, 나머지는 쏘쏘. 근데 한산이 이 수준이면 비상선언은 어떤거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제일 극혐하는게 그 안에 가득 들었다는데 난 또 얼마나 발광을하며 후기를 적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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